본문 바로가기
전시 & 문화재

<경기도 가볼만한 곳> 분원백자 자료관 : 분원리 백자의 가마터

by *Blue Note*

<조선 백자의 마지막 가마터> 분원백자 자료관

도자기라고 하면 왠지 현대적이지 않고 고리타분한 느낌을 받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도자기는 당시로서는 최첨단의 기술력이 집약되어 탄생한 제품이었다. 특히 조선왕조의 경우, 왕실에서 사용하는 도자기들은 사옹원을 두어 따로 제작, 관리하였을 정도였다. 왕실용 도자기들은 주로 경기도 광주지역에서 만들었는데, 흙과 땔감을 구하기 쉽고, 제작된 도자기들을 한강을 따라 운반하기가 용이하였기 때문이다. 분원리는 사옹원 산하의 분원들중 가장 마지막 가마터가 있던 곳으로 이곳 지명도 아예 분원리로 이름 붙혀져 백년 넘게 왕실용 백자를 구워왔다. 분원 백자 자료관은 바로 그 터에 세운 기념관이라고 할 수 있다 (가마터가 있던 정확한 위치는 팔당댐 건설로 인해 수몰되었다).

분원백자 자료관

빗속을 뚫고 달려왔다, ㅋㅋ

 

건물이 현대적 느낌이 팍팍나서

서양화를 전시하는 갤러리가 더 어울릴듯 싶지만

그또한 잘못된 선입견일 수 있다.

이렇게 멋지게 도자기 자료관을 세우다니...

기분이 한껏 좋아진다.

 

분원백자 자료관 내부

생각보다 아담하다.

폐교된 분원 초등학교 건물을

리모델링한 것이다.

 

마지막 관요였던 분원리 가마터는

13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퇴적층의 깨진 도자기들은 그 세월을 말해준다. 

 

다양한 도자 파편들

상감백자, 조선청자(백태청유)같은

희귀한 도자파편들도 있다.

 

여주 물토

백토의 다른 말이 물토다.

백자의 원료

 

양구 도석

소성하면 자기질화되는 돌이다.

 

백자청화 福문 접시

조선 19C

 

백자청화 영지문 접시

 

백자청화 '제'명 제기

조선19 세기

 

백자청화 봉황문 병

기형이나 채색, 문양에서

전형적인 19세기 백자의 특징을 볼 수 있다.

 

전시장 안쪽에서

입구쪽을 바라본 모습

 

관람을 마치고 자료관을 나서면

눈앞에 시원하게 풀밭이 펼쳐지고

오른쪽으로는 한강이 유유히 흐른다.

어느새 비는 그치고, 사방이 고요하다.

 

사옹원 분원리 석비군

제조나 번조에 공이 많은 이를 기리는 석비들인데

채제공의 이름도 보인다.

직접 도자기를 구운 미천한 도공들 보다는

관리 감독하던 벼슬아치들의 이름이 오른듯 하여

조금은 씁쓸한 마음이다.

 

영조대왕때 금사리 분원에서 이곳으로 옮긴후 고종황제때 (내 기억이 맞다면) 민영화될 때까지 분원리는 조선 백자의 마지막 맥을 잇는 보루였다. 이곳에는 천여명의 사기장들이 각각 분업의 형태로 백자를 제작하였다고 하는데, 한해에 보통 13,000 개 정도의 도자기를 생산하였다고 전해진다. 금사리 백자가 유백색을 나타내는대 비해 분원리의 백자는 청백색을 특징으로 한다. 분원리 백자는 전통적인 청화백자 이외에도 양각, 투각같은 다양한 기법이 많이 실험되었고, 화려한 채색자기들도 생산되었다. 대한제국이 망하면서 밀물처럼 흘러들어온 왜사기 그릇에 설 자리를 잃고 역사에서 사라지게 된 우리의 조선 백자... 덤덤하고 순하기만 한 모양과 흰색이 오늘은 처연하기만 하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