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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 문화재

<국립고궁 박물관 특별전> 청 황실의 아침, 심양 고궁 : 누르하치와 홍타이지

by *Blue Note*

<청 황실의 아침> 심양 고궁 : 홍타이지의 칼

 

청 황실의 아침, 심양 고궁전은 국립 고궁박물관이 중국 심양 고궁 박물원과 함께 기획한 특별전이다. 심양고궁은 청 태조인 누르하치와 태종 홍타이지가 사용했던 황궁이다. 1644년 수도를 북경 (베이징)으로 옮기면서 심양의 황궁은 후대 황제들이 심양에 있는 조상의 능에 제사를 지내러 올 때 머물렀던 행궁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 심양 고궁은 청나라 건국의 기틀을 다졌던 청나라 황실의 근원지일 뿐 아니라 만주족의 전통문화위에 한, 몽골, 티베트등 다양한 문화적 특징이 융합된 곳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는 청나라 초기 황실의 유물을 중심으로 북방의 작은 민족이었던 만주족이 중원을 장악하고 대제국으로 발돋음한 발자취를 따라가 보는 의미있는 여정이다. 심양 고궁은 200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청 황실의 아침

심양 고궁

 

청 태조 누르하치 초상

황색조복, 진주장식의 붉은 조관을 쓰고

용상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누르하치는 갑옷 13벌로 대업을 시작했다

만주족 특유의 팔기제도를 수립하고

몽골 문자를 토대로 만주족의 문자도 만들었다.

1616년 나라를 세우고 후금이라 칭했다.

 

누르하치 칼, 명나라 말 1595, 국가1급 문물

쇄자갑 청 1662-1795

 

누르하치 칼

명나라에서 누르하치를 용호장군으로

임명하면서 내린 칼이다.

천관, 사슴, 학, 옥토끼, 구름등의

길상문이 조각되어 있다.

칼집은 동과 상어가죽으로 감쌌다.

명나라 말 1595년

국가1급 문물

 

쇄자갑 청 1662-1795

청나라 병사들이 입었던

사슬로 된 갑옷

 

누르하치 시보와 함

시보는 시호를 새긴 인장이다.

용이 웅크리고 있는 형상의 손잡이가 있다.

시보를 보관했던 내외 함은

용과 봉황을 장식하고 금칠하였다.

청, 1645

국가 1급 문물

 

화살, 청 중기

촉의 모양과 재질에 따라

용도가 달랐다.

 

소리나는 화살 (효시), 청 1627-43

허공에 쏘아 공격의 시작을 알렸다.

 

홍타이지 초상

누르하치의 뒤를 이어 1626년 즉위하였다.

국호를 후금에서 청으로

민족의 이름을 여진에서 만주로 바꾸었다.

1644년 대륙을 통일한다.

 

 홍타이지 일상복 (황색무늬 비단포복)

한쪽으로 여미는 방식과

말굽모양의 소매(마제수)가 특징인

만주족 전통 양식의 옷이다.

청, 1627-43년

국가 1급 문물

 

 홍타이지의 칼

홍타이지가 전쟁중에 사용했던 칼이다.

강철 칼날의 옆면에 홈이 파여있고

칼자루에는 끈이 감겨있다.

소나무로 만든 칼집은

상어가죽으로 감싼 후

금동 장식테를 둘렀다.

칼집에 달린 흰 가죽에 한자와 만주 문자로

'태종 문황제 (홍타이지)의 칼 한자루가

성경(심양)에서 소중히 보관되어 오다'라고 적혀있다.

청 1627-43, 국가 1급 문물

 

 홍타이지 활

본체는 나무이고 소뿔로 면을 감쌌다.

잡는 부분은 연한 나무 재질로 감싸고

양 옆을 연녹색 상어가죽으로 덧댄후  

해와 달 문양을 새겼다.

청 1627-43

 

 숭정전

홍타이지의 집무실이자

사신을 접견하는 의식을 치루었던 곳이다.

보좌를 중심으로

병풍, 촛대, 향로, 향정등이 화려하기 이를데 없다.

 

유구한 중국의 역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사실 상대적으로 관심도 적다. 따라서 긴 호흡으로 중국역사를 이해할만한 안목이 나에겐 아예 없다. 그래서 청나라 초기라는 시대적 규정속에서 매우 선택적으로 소개되는 유물들이 오히려 감상하기가 편했다. '심양 고궁'이 전시의 주제임에도, 건축물에 대한 설명은 전시실 한 켠에 마련해 놓은 동영상을 통해 간접적으로 감상할 수 밖에 없었지만, 청 태조와 태종의 유물은 청 제국의 힘을 느끼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가장 부러웠다고 할 만한 것은 자기 나라 태조, 태종이 사용했던 칼, 화살, 그리고 실제로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잘 보관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종대왕이 입으셨던 일상복 하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봤다. 아니 그보다 용안을 그린 어진이 불타지 않고 남아 있다면 하는 그런 아쉬움 마음이 그들의 유물을 보면서 더욱 커졌다. 병자호란을 일으키고, 삼전도의 굴욕을 안겨준 홍타이지의 유물들, 특히 그의 칼과 활은 만주족이 아닌 한민족인 나에게 어쩔 수 없는 무기력과 억울한 느낌을 주었다. 유물이 가지는 세련된 아름다움으로 인해 그 불편한 느낌이 더 깊어지는 이 희안한 감정도 어쩔수 없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지나간 역사를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도 필요하다. 굳이 외면하거나 상대를 폄하할 일이 절대 아니며, 반대로 오바하면서 우리 것을 과장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일본에 대해 가지는 어쩌면 맹목적이거나, 사실은 열등감과 트라우마에 기인한 한풀이는 이제는 그만했으면 좋겠다. 정치권에서도 이를 이용해 자기들 정치적 기반을 넓히고 반대자들을 매도하는 수단으로 삼지 말기를... 사실 외국인의 눈으로 보면 이렇게 유치할 수가 없는 것이다. 증오에 가득차서 자기 생각과 다르면 아무에게나 <토착왜구>라는 딱지를 붙혀 동족을 모욕하지 말기를... 그대들도 <토착짱깨>는 아니지 않는가. 사실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들중 일본의 역사에 대해 아주 기초적인 사실 하나라도 제대로 아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공부도 하지 않으면서 목소리만 크면 그게 무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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