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시 & 문화재

<고려대 박물관> 최북의 산수도

by *Blue Note*

문제적 화가 최북 : 산수도

 

조선 후기의 화가, 최북을 잘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흔히 말하는 김홍도, 신윤보, 정선만큼 유명한 화가는 분명 아니다. 하지만 최북의 예술혼과 작품들은 특출나다. 조선 회화사에 절대 빠질 수 없는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삶과 죽음이 드라마틱하고, 그런 인생의 굴국에서 나온 그림들은 처연하고 아름답다. 언젠가 훗날, 나의 그림을 알아줄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최북... 그의 그림을 고려대학교 박물관에서 처음으로 실견했다. 벅차오르는 감동은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더욱 심해져만 간다.

산수도

그림의 중앙 좌측 여백에 최북의 호,

호생관이라는 글씨가 확연하다.

종이에 수묵, 18세기 후반

그는 메추라기, 게 그림으로 유명하지만

사실 그의 진가는 산수화다.

예를 들어 그의 풍설야귀도는 정말 최고다...

 

 

그림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확대해 찍어봤다.

그림, 특히 유리액자에 표구된 그림을

촬영하는 것은 너무나 어렵다, ㅋㅋ

고려대에 소장되어 있는 그의 또다른 작품인 계류도는

수장고에 있는지

이 날 볼 수 없어서 많이 서운했다.

 

잠깐 언급했지만 박물관에서 서화를 촬영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사방 가로선과 세로선의 직각을 정확히 맞추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림의 형태 (직사각형, 가로 혹은 세로로 긴 사각형, 병풍형태 등등) 를 4 :3 혹은 16: 9 의 사진 비율에 억지로 구겨넣어 촬영하는 일도 고역이다. 위의 처음 두 장의 사진에서 보듯, 측광도 여간 골치아픈 일이 아니다. 스팟으로 측광을 했을 경우는 찍을때마다 노출이 널을 뛰니, 나같은 아마추어에게는 정말 서화 촬영은 가능하면 피하고 싶은 일이다. 게다가 서화실의 조명은 대체로 어두운 반면, 여기에 유리로 표구되어 있는 작품들은 반사가 되거나 촬영자의 그림자가 투영되어 사진이 아예 망가져 버린다. 그럴 경우는 촬영을 포기하는 편이 낫다. 어쨌거나 이러한 어려움을 무릅쓰고 이 날 최북의 산수도는 내가 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는 최선을 다해 촬영을 했다. 그가 남겼다는 말처럼 '후대에 알아주는 이가 있을 것이다'는 바램을 내 식으로 해석해서 실천하는 일은, 그의 작품을 충분히 음미하고, 최선을 다해 촬영을 해서 사진 파일로 소장하는 것이었다.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중인 출신의 화가로 괴팍하고 별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고 전하는 최북. 그는 막무가내로 그림을 부탁하며 윽박지르는 양반네 앞에서 자신의 눈을 찔러 한쪽 눈을 실명하기도 하고, 금강산 구룡폭포에 죽겠다고 몸을 던진 객기로도 유명하지만, 자기가 추구하는 예술에 대한 열정과 그것을 한낱 얕은 재주로 치부하는 세상에 대해 치열하게 반항했던 인간으로 나는 기억하고 싶다. 며칠을 굶다가 그림 한점 겨우 판 돈으로 최북은 술을 진탕 마시고 눈오는 겨울날 성벽 아래서 얼어 죽는다. 삶만큼 죽음도 극적이다. 그의 그림 앞에서 그 지난한 삶을 더듬어 보았다. 꼭 그렇게 자신을 힘들게 하면서 살아야 했냐고, 어쩌면 최북 당신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을 거라고... 한참을 그림을 마주하고 서있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