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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 문화재

백남준의 다다익선 vs 경천사지 십층석탑

by *Blue Note*

답사의 맛 : 국립현대미술관 vs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비평가 홍지석이 펴낸 <답사의 맛>이라는 책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밑줄까지 쳐가며 중요한 부분은 몇번씩 곱씹고 음미할만큼 이 방면에 문외한인 나에게는 예술품을 보는 시각과 방향을 넓혀주고 새롭게 정립해준 참 고맙고 소중한 책이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글쓰기 방식의 새로움, 통찰력, 유머와 푸근함, 동서양과 과거현재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지적 유희를 고루 즐길 수 있다. 몇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는 책 내용중에 <다다익선, 여행자와 유목민>이라는 부제가 붙은 글이 있다. 여기서 다다익선은 1988년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를 말한다. 그런데 홍지석은 단순히 다다익선에 대한 설명으로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 아니라 느닷없이 쌩뚱맞게도 경천사지 10층 석탑을 끌어들인다. 그러면서 어찌보면 모든 면에서 아무 연관이 없을 것 같은 두 예술품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맛깔스러운 글쏨씨로 풀어나간다. 이 글을 읽고나서 나는 책에 있는대로 다다익선과 경천사지 십층석탑을 다시 찾아가보기로 했다. 다다익선을 마지막으로 본지는 수십년은 족히 되었고, 경천사지 십층석탑은 불관 몇주전에 봤었다 (국립중앙박물관 1층  대회랑에 있기에 가면 안볼래야 안볼수가 없다). 그러나 같은 작품이라도 다른 관점으로 보기 시작했다면 그것은 전혀 새로운 작품이고 처음 보는 것이 된다. 예전에 봤던 최근에 봤던 상관없이 '모두 처음보는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설레었다.

국립현대 미술관 과천관

<다다익선>이 있는 곳이다.

 

다다익선의 높이는 18미터

작품에 사용된 모니터는 모두 1003개라고...

지금보니 과연 탑모양의 형식이다.

작품 주위에 있는 나선형 계단을 통해 올라가면

작품의 상부까지 눈높이에서 볼 수 있다.

 

세월이 흘려 대부분의 모니터는

작동이 되지 않는다.

모니터 수리, 교체문제에 대해

찬반으로 의견이 갈리는 것으로 알고있다.

 

 국립중앙 박물관

경천사지 십층 석탑이

박물관 1층 대회랑 끝에 있다.

 

경천사지 십층석탑,

고려 1348년

국보 제86호, 국립중앙박물관

 

사면돌출형의 기단구조

많은 장면을 새겨넣을 공간이 확보된다.

 

다다익선처럼 경천사지 석탑도

높은 위치에서 조망하면서 볼수 있다.

 

박물관 3층 꼭대기에서 내려다본

경천사지 십층석탑의 모습

 

대리석으로 만든 탑이기에

오랜 세월 비바람에 부식되어

식별할 수 없는 부분도 많지만

남아있는 부조들은 섬세하고 화려하다.

 

 

 

홍지석의 해석은 이렇다. 두 작품에는 공통적으로 '수다스러움이 있다'는 것이다. 수많은 모니터에서 쉴새없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다다익선의 다양한 영상들은 경천사지 십층석탑의 수많은 탑신에 빼곡히 새겨진 부조에서 보이는 다양한 이야기들과 본질적으로 같다. 그리고 이 수다스러움은 경박하지 않고 그 자체로 아름다움과 매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통일신라에서 만개했던 전형 석탑의 틀을 깨고, 층수를 높히면서 장식성을 한껏 더한 고려의 경천사지 십층석탑은 흔히 '한국의 미'라고 이야기되는 수수하고 검박한 느낌과는 정반대의 미학적 세계를 구축한 셈이다. 이 석탑은 국립중앙박물관 1층의 맨 끝 홀에 옮겨져 있기에 주변의 계단을 이용해서 윗층으로 오르면 탑의 상부를 더 자세하게 볼 수 있다. 이처럼 다다익선이 전시되어 있는 국립현대 미술관의 나선형 계단과 유사한 방식으로 십층석탑을 관람할 수 있다는 것도 재미있다. 그러고 보니 두 작품은 작품 자체뿐 아니라 관람하는 방식도 비슷한 셈이다. 이렇게 두 작품을 '수다스럽고 장식적'이라는 하나의 공통된 고리로 연결해서 해석하고 또 직접 가서 보면서 확인해보니, 이제까지 단순히 하나만 따로 떼어놓고 보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그 즐거움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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