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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 문화재

<국립중앙박물관> 자매명문 : 자기 자신을 노예로 팔다

by *Blue Note*

<조선시대 백성의 삶> 자매명문

국립중앙박물관 조선관을 관람하다가 유독 나의 시선을 붙잡아 두었던 유물 2점을 소개한다. 하나는 19세기 조선 백성들의 소박한 상차림이었고 다른 하나는 너무 가난해서 자기 자신을 노비로 팔아야했던 가슴아픈 사연이 있는 자매명문 (自賣明文) 이다.

국립중앙박물관&#44; 소반 1
국립중앙박물관&#44; 소반 2

소반과 식기. 조선 19세기. 조선시대 상차림은 몇가지 반찬과 커다란 밥그릇이 놓인다.모든 열량을 밥에서 얻어야했기에 조선사람들은 모두 대식가였다.

 

국립중앙박물관&#44; 자매명문

자매명문 自賣明文 1809년, 순조 9년자기 자신을 노비로 판다는 가슴아픈 내용이다.

 

자매명문에 대한 설명을 그대로 옮겨본다. <박복덕이라는 사람이 송참봉댁에 자신과 자식 상금, 상이를 17냥에 노비로 매매하며 작성한 문서이다. 박복덕은 남편 이북달이 굶어죽을 상황이 되자 자신과 자식들을 노비로 팔았다. 문서 끝부분에는 본인임을 증명하는 손바닥 그림이 있다.> 어느 시대나 가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으나 조선시대의 세금과 군역은 가혹했다. 농민들은 토지를 잃고 소작농으로 전락했고 많은 수가 고향을 떠나 한양으로 몰려들어 노동자가 되었다. 유교를 국가 통치의 이념으로 삼고, 품위있는 문화를 발전시킨 조선이지만, 기본적으로 조선은 가난한 나라였다. 더우기 조선 후기가 되면, 정치적 불안이 가중되고, 빈부차가 극심해지면서 힘없는 백성들은 정말 살기가 팍팍했다. 자매명문을 보면서 가슴 한 구석이 무엇에 찔린듯 아파와 한동안 주체하기가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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