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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 문화재

<여주 가볼만한 곳> 세종대왕 역사문화관

by *Blue Note*

<경기도 여주> 영릉 : 세종대왕 역사문화관

 

여주 신륵사 옆에 위치한 여주 박물관을 관람한 후 다음 행선지로 정한 곳은 세종대왕의 능인 영릉이었다. 영릉은 대한민국 최고의 명당자리로도 유명하지만, 나에게는 우리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왕이었던 세종대왕의 인품과 업적을 기리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게되는 곳이다. 그런데 이날따라 영릉 주차장이 한산했다. 아마도 평일이라 그렇겠거니 생각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조용한 것이 이상해서 주차후 급히 영릉쪽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날은 영릉 출입이 불가능했다. 알고봤더니 2018년 12월까지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진행한다고 한다. 다만 근처에 있는 효종대왕릉을 통해 우회하는 방법으로 영릉을 가볼 수는 있다. 이미 늦은 오후로 접어드는 시간이라 하는수없이 이번 영릉 관람은 포기하고 아쉬운 마음에 세종대왕 역사문화관을 둘러보았다. 엄청난 세계사적 업적인 훈민정음 창제 말고도 세종대왕은 과학, 출판, 음악등에 두루 다양한 업적을 남겼다. 세종대왕 역사문화관에서는 이러한 자료들을 찬찬히 잘 정리해 놓았다. 다만 국보급 유물이 다수 포함되어 있는 고서적들, 그리고 종료제례악에 사용된 악기들은 대부분이 복제품이어서 다소 아쉬웠다.

세종대왕은 해시계인 앙부일구를 제작하였다.

이 유물은 그후 후대에 제작된

상아로 만든 휴대용 해시계로

제작 연도는 1901년이다.

 

 홍대리석으로 만든 휴대용 해시계

조선 후기

 

 휴대용 해시계, 20C초

 

세종실록

세종의 재위기간 (1418-14500) 동안의 기록으로

163권 154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국보 제151호

 

농사직설, 1429 (세종 11년)

변효문등이 세종의 농본주의 청책에 따라

경험 많은 농부들의 기술을 모아서 엮은 농업기술서이다.

씨앗 저장법, 토질개량법, 모내기법등

방대한 내용이 세심하게 정리되어 있다.

 

월인천강지곡, 1448 (세종30년)

석가의 공덕을 찬양하기 위해 편찬한 대서사시이다.

용비어천가와 함께 훈민정음으로 표기된 대표적인 서사시로

국보 제 320호다.

 

향약집성방, 1433 (세종15년)

유효통, 노중례, 박윤덕등이 편찬한 의서

수백여종의 국내외 의서를 참고해

조선인의 체질에 맞게 치료법을 정리하였다.

이 책은 조선 인조연간인 1633년(인조11)에

훈련도감자 소활자로 인쇄한 것이라고 한다.

 

 

세종은 우리의 음악발전에도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사진은 종묘제례악에 사용되는 편종(위), 특종 (아래)이다.

1429년, 세종 11년

 

편경

기러기 울음소리를 닮은 소리를 낸다고 한다.

 

어 (tiger scraper)

호랑이 형상의 악기이다.

대나무로 만든 채로 호랑이의 머리를 세번 치고

이어서 등위의 톱니를 한번 긁어내리는데

이것을 세번 반복하면 악기들이 합주를 마치고 연주가 끝나게 된다고...

 

지난해 깊어가는 가을에 영릉을 방문했던 것이 가장 최근이었고 이번에 봄바람 날리는 영릉의 모습을 보고싶었는데 보수공사로 관람이 제한되어 많이 아쉬웠다. 하지만 세종대와 역사문화관에서 차분하게 세종대왕의 발자취를 짚어보는 시간을 갖게 된 것은 충분히 의미있는 일이었다. 포스팅에 올린 유물들 말고도 다양한 영상자료와 설명들이 꼼꼼하고 흥미롭게 잘 정리가 되어 있었다. 백성을 사랑하고 귀하게 여긴 어진 임금의 표상인 세종의 애민사상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영릉은 이미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조선 왕릉중의 하나이지만, 보수가 성공적으로 끝나서 보다 원형에 가깝고 품위있는 왕릉의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해본다. 개인적인 바램은 이번 보수 공사때 초입에서 홍살문을 지나 정자각에 이르는 어도, 신도가 너무 현대적인 느낌 (같은 크기로 반듯반듯하고 틈새하나 없다) 인데, 고증을 통해 좀더 자연스럽고 고졸, 담박한 모습을 되찾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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