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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 문화재

<오사카시립 동양도자기 미술관> 일본에 있는 우리의 문화재 : 고려청자

by *Blue Note*

<오사카시립 동양도자 미술관> 고려 청자

 

오사카는 일본 제 2의 도시다. 도쿄가 행정의 중심이고 교토가 역사와 문화의 중심도시라면 오사카는 비즈니스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관광객이 특히 많이 몰려서 쇼핑을 즐기는 곳도 오사카다. 하지만 내가 오사카를 방문한 목적은 딱 하나다. 오사카 시립 동양 도자박물관을 방문해서 그곳에 소장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국보급 도자기를 보는 것... 그 외에 도톤보리의 휘황찬란한 네온과 인파로 넘쳐나는 먹자골목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그저 덤일 뿐이었다. 오랫동안, 적어도 4-5년 동안 늘 마음속에 품어 왔던 곳, 홈페이지 방문만 수십, 수백번을 했던 박물관이다. 가장 아름다운 우리 나라의 도자기들이 소장되어 있는 곳이라 해도 크게 틀리지 않기 때문이다.

 청자음각 모란문 반

이게 바로 고려 청자의 비색이다.

바닥 안쪽에 모란 한송이를 커다랗게 음각으로 새겼다.

구연부에는 6군데에 걸쳐 홈을 파서

꽃잎 모양을 형상화했다.

고려 12세기, 고려 청자의 전성기다.

 

 청자병

아무 장식이나 무늬가 없는 소문 청자로

정선된 태토와 맑은 유약으로

비색을 완성하였다.

고려 12C 전반

 

 청자 과형병

오이 과(瓜)자를 썻지만

참외 모양을 형상화한 병이다.

고려 인종의 능에서 출토된 유사한 병이

국보 제 94호로 지정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고려 12C 전반

 

 청자양각 죽순형주자

너무나 아름다워서 기가 콱 막히는 청자 주자다.

양각으로 표현한 죽순의 껍질,

잎맥은 섬세한 음각으로 시문하였다.

디자인의 독창성, 기형, 색깔...

모두 최고의 경지다.

고려 12세기

 

 청자음각 연화문 삼이호

'삼이'라는 것은 항아리 어깨 부분에

귀처럼 생긴 고리가 3개라는 뜻이다.

끈을 이용해 뚜껑에 있는 고리와 몸체를

연결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역시 고려 청자의 전성기때 만들어졌다.

고려 12세기

 

 청자음각 포류수금문 정병

정병은 원래 절에서 사용하는 불구이지만

고려시대에는 일반에서도 많이 사용하였다고 한다.

고려인들이 가장 좋아하였던 무늬인

물가풍경과 버드나무가

음각으로 시문되어 있는 순청자다.

고려 12C

 

 청자 상감 죽학문 매병

한껏 부푼 어깨,

굽쪽으로 내려오는 유려한 선은

전형적인 고려 매병의 특징이다.

대나무와 학은 회화적이라기 보다는

다소간 도안화되어 있다.

고려 12-13 세기

 

청자 퇴화 운문 매병

고려 12-13세기

언뜻 보면 상감같지만

백색의 안료로 문양을 그린 퇴화기법이다.

이런 대작의 퇴화기법 매병은

거의 유래가 없다고 한다.

 

 청자상감 육학문 도판

실용품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용도는 모른다.

고려 12-13세기

 

청자 사자형 베개

조형적 아름다움뿐 아니라

고려청자의 비색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고려 12C

 

청자조각 동녀 & 동자형연적

이 두 유물은 같은 제작자에 의해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한다.

고려 12 세기

 

청자조각 동녀형연적

고려 12C

 

청자조각 동자형연적

고려 12C

 

청자상감 국모란문 학수병

장경병을 일본에서는 학수병이라고 한다.

고려 12-13C

 

청자상감 연당초문 병

역삼감 기법을 사용한 장경병은

이 유물이 유일하다는 설명이다.

고려 12-13 세기

 

청자퇴화 초화문 주자

원형 창에 백점토를 칠하고

가는 음각선으로 초화문을 새겼다.

중요문화재

고려 12세기

 

청자상감 동자보상화당초문 주자

당초줄기를 잡은 동자와

보상화풍의 꽃은

자손번창의 의미를 담고 있다.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유물이다.

고려 12-13 세기

 

청자상감 봉황문 방합

화장품을 보관하였던 것으로 추정한다.

고려 13세기

 

진열된 청자들은 하나같이 국보급이다.

 

과연 기대했던 것 만큼, 아니 그보다 훨씬 더 큰 감동을 받았다. 이 박물관에 이렇게 멋진 한국의 도자기 컬랙션이 가능했던 이유는 재일 교포 사업가이자 경제학자인 이병창 선생때문이다. 그는 소장하던 국보급 한국 도자기들을 오사카 시립 동양도자 미술관에 기증하였다. 우리로서는 한국에 있는 국립 중앙박물관에 기증했으면 훨씬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크지만, 조금 더 내막을 들여다보면 선생의 큰 뜻에 고개가 숙여진다. 이병창 선생이 자신의 소장품을 기증한 이유는, 이 도자기들을 통해 일본에 있는 우리 동포들이 한국인으로서의 긍지을 느낄 수 있도록, 또 일본사람들에게는 우리 도자기의 아름다움을 알리고자 함이었다. 해외에 흩어져 있는 우리의 문화재들이 국내로 무사히 돌아오도록 노력하는 것은 의미있고 중요한 일이지만, 외국의 유수한 박물관에서 우리의 문화재들이 뛰어난 예술성으로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 첨병 역할을 하는 것도 멋진 일이다. 결국 모든 것은 어떤 측면에서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일 수 있다. 일본이라면 입에 거품을 물고 오버하면서 한편으론 동족에게 '토착 왜구' 운운하는 사람들일수록 역사에 대해 무지하고, 문화적으로는 내면이 헐벗었다. 저렴한 것이다. 최근 일본과 더욱 감정적으로 틀어지고 민족의식을 빙자한 야만스런 국뽕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과연 해법은 무엇인지 길을 묻고 싶은 마음이다. 한가지 확실한 건, 그들을 깍아내리고 헐뜯는다고 우리가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의 청자가 일본의 채색 자기보다 훨씬 예술성이 뛰어나고 그 기술은 모두 우리가 전수해 줬다고 우기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그건 컴플렉스의 다른 표현이다. 우리 청자는 일본 도자기와 아예 다르다. 비교할 이유가 없다. 비교하지 않아도 고려의 청자는 너무나 아름답고 보는 이에게 큰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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