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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생각들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 / 어른들이 보는 아동극

by *Blue Note*

 어른들이 보는 아동극 :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

제목에서 묻어나는 발칙함에 다소 당혹스럽다. 하지만 순정만화 같은 달콤하고 아기자기한 사랑이야기를 기대했다면 커다란 착각이다. 일곱 난장이 중에 백설공주를 사랑한 넘이 있었다……?  우선 그 유쾌한 상상력에 박수를 보낸다. 그런데 백설공주에 대한 그의 사랑이 그렇게 녹녹한 것이 아니고 목숨을 건 처절한 것이었다면?

아담한 소극장에서 공연되는 이 연극은 우선 재미있다. 단순하지만 매력적인 무대 소품들의 기발한 활용, 공연내내 몸으로 표현되는 몸짓 언어들은 이미 그 자체로 이 연극에 활기찬 생명력을 불어넣기에 충분하다.

 

그러니까 주인공은 막내 난장이 반달이다. 사족을 붙히자면 이 연극은 백설공주와 왕자님이 주인공이 아니고 공주를 사랑하는 벙어리 난장이인 반달이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몸짓과 춤으로 말을 대신하는 반달이 독이 든 사과를 먹고 잠에 빠진 백설공주를 구하기 위해 반달이는 목숨을 건 여행을 시작하지만 반달이의 처절한 춤에 담긴 메시지를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극심한 소통의 부재 무심한 사람들 속에서 반달이는 서서히 지쳐가지만 단 한 사람 반달이의 몸짓 언어를 이해하는 왕자를 만나는데 결국 성공한다 (사실 이 부분은 개인적으로 연극에서 가장 맘에 들지 않는 작위적인 설정이기는 하다). 자기가 사랑하는 백설공주를 살리기 위해서는 왕자가 반드시 필요했고 왕자를 본 백설공주는 필연적으로 왕자와 사랑에 빠진다는 점에서 반달이의 짝사랑은 비극일 수 밖에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온 몸을 바쳐 살려내지만 보답 받지 못한 채 쓸쓸히 퇴장하는 반달이 (ABBA의 노래 Winner takes it all 아십니까?)

반달이는 백설공주를 그리워하다 숨을 거두지만 오랜 세월이 흐른 후 백설공주는 비밀의 방에서 발견한 거울을 통해 반달이가 자기를 얼마나 피눈물나게 사랑했었는지를 알게 된다. 왕비님(백설공주는 왕자와 결혼하여 백설 왕비가 되었다, ㅎㅎ)을 가장 사랑하시는 분은 현 국왕이신 폐하이십니다. …… 하지만 왕비님을 가장 사랑했던 사람은 안개꽃밭에 잠들어 있는 벙어리 난장이 반달이입니다……”. 안개꽃밭에 환하게 웃으며 잠들어 있는 반달이의 모습이 무대 전면에 클로즈업 되면서 연극이 막을 내릴 때쯤, 나는 촌스럽게도 그만 가슴이 먹먹해졌다. 흘깃 옆을 보니 아내와 큰 놈이 소리 죽여 울고 있었다. 둘째 녀석은 왜 반달이가 죽어야만 하느냐고 집에 오는 내내 씩씩거리며 연극 내용에 심한 불만을 터트렸었고

어른들이 보는 아동극,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는 우리가 애초부터 가지고 있지 않았던, 혹은 어느 한순간 가졌었지만 이미 오래 전에 폐기 처분해버린 순수하고 소중한 사랑에 대한 추억을, 언어가 아닌 반달이의 몸짓으로 선물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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