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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 문화재

<원주 여행> 뮤지엄산 : 종이 박물관 : 종이의 역사, 종이 공예품

by *Blue Note*

<원주 가볼만한 곳> 뮤지엄산 : 종이 박물관

 

뮤지엄산은 건축적인 아름다움과 정원으로 더 알려진 곳이지만, 사실 이곳에는 종이 박물관이 상설 운영되고 있다. 뮤지엄 산을 운영하는 기업이 한솔제지를 거느린 한솔그룹임을 감안하면 종이 박물관을 건립한 것은 참으로 적절하고도 의미있는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종이박물관은 기록매체로서의 종이의 역사뿐 아니라 <종이 이전의 기록 도구들>도 함께 전시되어 있는데, 지식의 축적과 전달이라는 인류 발전의 자못 거대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전시의 규모나 유물이 반드시 방대하지 않아도 충분히 의미있고 감동적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생각된다. 종이박물관의 또다른 특징은 다양한 종이로 제작한 공예품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는 점이다. 종이 공예의 기법은 매우 다양한데, 대표적인 것만 몇개 정리하면 종이를 여러장 겹겹이 붙혀 두껍게 만드는 후지공예, 나무에 종이를 붙히는 지장공예, 종이를 꼬아서 새끼줄처럼 만드는 지승공예, 잘게 찢은 한지를 물에 불린 뒤 풀에 섞어 형태를 만드는 지호공예등이 있다. 종이 박물관에 전시된 공예품들의 숫자가 아주 많은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기법으로 제작된 종이 공예품들이 전시되어 있고, 그 유물들의 수준도 상당하다.

뮤지엄 산

 

종이 이전의 글쓰기 재료들이

한 곳에 정리되어 있다.

 

점토판에 새겨진 쐐기문자 (복제품)

기원전4천전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인들이 만든

인류 최초의 문자다.

갈대로 점토판에 기록하고 말려서 보관하였다.

 

파피루스

나일강변의 갈대의 일종인 파피루스는

중국에서 종이가 들어오기 전까지

지중해 연안에서 오래도록 사용되었다.

기원전 3천년

 

패엽경

인더스 문명에서 사용한 글쓰기 재료다.

다라수 잎을 건조시켜

뾰족한 도구를 이용해 기록했다고 한다.

기원전 3천년

 

갑골문자

거북등에 기록한

고대 중국 상나라의 문자다.

기원전 1300년전

 

양피지 악보, 16세기

양피지는 처음 소아시아 페르가몬의 왕인

에우메네스 2세 (BC 197-159)에 의하여

파비루스 대체품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종이의 발명과 전파

공식적으로 종이는 전한의 환관이었던

채륜이 서기 105년 발명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이보다 앞선 전한시대에 이미 실존했다는

고고학적 증거가 있다고 한다.

 

삼층 지장

나무 뼈대위에 한지를 두세겹 바르는

지장기법으로 만든 장이다.

 

지승 자라병

종이를 꼬아만든 새끼줄로

자라병을 감싸고

표주박을 달아 실용성을 더하였다.

19세기

 

진신 (유혜 鍮鞋)

들기름에 절인 종이를 여러겹 겹쳐서 바닥을 만들었다.

밑창에는 원형 돌기를 박아서

신의 수명을 길게하고

진흙이 달라붙는 것을 방지하였다.

18세기

 

호랑이 형태의 베개

가장 인상적이었던 종이 공예품이다.

 

오방색의 아름다운 실첩

수놓을때 사용하는 실과 헝겊을 보관한다.

종이를 겹겹이 접어

내부를 폈다 접었다 할 수 있는 여러개의 칸이 있다.

 

초나 등잔을 넣는 등이다.

기름종이를 주름잡아

아코디언처럼 접었다 펼 수 있게 만들었다.

중앙에 초를 고정하는 원통형이 있다.

 

갈모

비오는 날 갓 위에 덮어쓰는 모자다.

우산처럼 살이 있어서

접었다 펼 수 있다.

기름먹인 한지로 만들었다.

 

이층 나전농

곳곳에 배치된 이런 고가구들이

박물관의 품격을 더한다.

 

선사시대에서 역사시대로 넘어가는 결정적인 대전환은 문자의 발명에 있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문자를 기록, 보존하기 위해 인류는 점토판, 거북등, 파피루스, 양피지같은 재료들을 사용하였다. 종이 이전의 기록수단들이 정리되어 있는 전시실은 그런 점에서 매우 흥미로웠다. 기록을 통한 지식의 축적과 확대 재생산이 가능해짐에따라 우리 인류는 많은 정보를 효율적으로 운용하고 후대에 전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이후 중국에서 발명된 종이는 이러한 변화를 획기적이고 혁명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채륜이 발명한 종이의 제조기술은 가장 처음 한반도로 전파되었다고 한다. 그 시기는 불경이 전해진 4-5세기경으로 추정하는데 이후 고구려의 담징이 610년 일본에 종이제조법을 전했다는 일본서기의 기록이 있다. 서양에 전파된 시기를 8세기로 본다면 상당히 빠른 셈이다. 종이는 기록을 위한 수단으로뿐 아니라 각종 공예품과 고가구에도 사용되었음을 종이 박물관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이 날 인상깊었던 것은 호랑이 형태의 종이 베개였다. 민화에 등장하는 호랑이처럼 친근하고 해학적인 호랑이 그림도 정겹지만 베개의 기능을 잘 살린 장인의 솜씨가 눈길을 붙잡아 두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물론 베개의 재료가 종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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