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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 문화재

국립현대미술관 개관50주년 기념전 <광장 : 미술과 사회 1900-2019> 1부. 1900-1950

by *Blue Note*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광장 : 미술과 사회 1부>

 

전시회의 이름이 상당히 길다. 국립현대 미술관이 개관한지 올해로 50년이 되어다고 한다. 이를 기념하여 대대적인 전시회를 열었는데, 공식적인 전시회의 이름은 '국립현대미술관 개관50주년 기념전 <광장 : 미술과 사회 1900-2019>'이다. 제목에서 보는 것처럼 사회성이 짙고 역사적, 정치적 담론에 대한 고민의 흔적도 엿보이는 듯 하다. 전시 방식도 특이하다. 1900-2019년에 이르는 기간을 셋으로 나누어서 190-1950년까지에 해당되는 작품들을 광장1부로 덕수궁관에서 전시하고 2부 (1950-2019년)는 과천관에서, 그리고 3부 (2019)는 서울관에서 동시에 전시한다. 개인적으로 1부의 작품들에 관심이 있어서 오랜만에 덕수궁 나들이를 하였다. 오늘은 그 중 일부 작품들에 대해서 우선 포스팅한다.

마침 덕수궁 수문장교대식이 열리고 있었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전시장 입구에 커다랗게

이응로 화백의 군상이 걸려있다.

작품명과 전시회 정보를 써놓은

저 하얀 벽에서는 천으로 만든 걸개같은 느낌을 받았다.

 

군상

이응노, 1982년

 

민충정공 혈죽도

충정공 민영환의 유품이 있던 방에서

솟아났다는 혈죽을 그린 판화이다.

양기훈, 1906년, 종이에 목판화

 

최익현 초상

채용신, 1925년

 

석란도(좌), 묵란도, 1920년대

일제 강점기에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항일 독립운동을 한

우당 이회영의 그림이다.

 

우당인보

이회영의 인장을 모아놓은 것으로

친동생인 이시형 선생의 글귀가 가슴을 친다.

<광복 이듬해 겨울, 친아우 시영은 눈물을 닦으면서 쓴다 (후략)>

 

설중매, 1933년

의병출신 박기정의 그림이다.

차강 선비박물관 소장

 

대나무

이응노, 1971년

눈이 시원해지는 멋진그림이다.

 

정의인도 正義人道, 1946년

서화가이자 평론가, 독립운동가였던

위창 오세창이 썻다.

 

회갑연시

한용운, 1939, 만해기념관

 

구성

이응노, 1968년

 

전시된 작품들의 면면에서 지난했던 우리의 역사를 읽을 수 있었다. 특히 덕수궁관에서 다루는 시대적 배경은 1900-1950년으로 대한제국 몰락과 일제 강점기, 그리고 해방공간에서의 혼란과 6.25전쟁 직전의 좌우대립이라는 숨가뿐 역사가 들어있다. 이러한 급변의 시기에 민영환, 최익현, 이회영, 박기정, 오세창, 한용운 같은 우국지사의 작품이나 그들을 소재로한 그림들은 상당히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실제로 1부 전시의 부제는 <의로운 이들의 글과 그림>이다. 현대미술관측의 설명을 보아도 <19세기말 개화기에서부터 일제강점기, 해방을 거치면서 암울한 시대속에서도 '의로움'의 전통을 지켰던 역사적 인물과 그들의 유산에 대해 살펴본다. 의병출신 화가들의 유묵에서부터 망국의 시대에도 조선 고유의 정신과 미학을 찾기 위해 고심했던 수많은 예술가들의 고투의 흔적을 만난다>고 했다. 그런데 어딘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이러한 기획의도라면 덕수궁 현대미술관 1층 전면벽에 굳이 이응노 화백의 <군상>을 걸어야만 할 불가피하고도 절박한 이유가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1982년 작품을 말이다. 앞서 언급한 애국지사들은 이미 역사적 평가가 끝난 인물들이다. 그에비해 이응노 화백은 1960년대 후반, 동백림사건으로 고초를 겪은 현대사적 인물이다. 다시 말하면 그에관한 역사적 평가는 아직 내려지지 않은 것이다. <의로운 이들의 글과 그림>이라는 부제가 붙은 대규모 전시의 처음과 끝에 다른 애국지사들을 제치고 이응노 화백의 작품을 석점이나 억지로 무리해서 끼워넣은 이유는 대충 짐작은 간다. 사실 별 관심은 없다. 하지만 그 잘못된 의도때문에 전시회 전체의 모양새가 우스꽝스러워지고 기획의 순수성이 의심받는 것은 사실이다. 뭐, 그래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기껏 변방의 블로거 따위가 딴지거는 것이 무슨 대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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