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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 문화재

<가야본성> 칼과 현 : 가야의 교역

by *Blue Note*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가야본성 : 가야와 이웃나라들

 

가야가 당시 주변국들과 활발하게 교역하였음은 익히 알려져 있다. 중국, 왜 뿐 아니라 멀리 서역까지도 가야의 교역 국가였다는 사실은 가야가 국제 무역의 허브로서 입지가 탄탄했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많은 유물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전시에서 새로 알게된 사실은, 이미 가야 이전에도 이러한 교역망은 이미 갖추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가야가 건국되기 전인 기원전 3세기경, 남해안 사천의 늑도 유적이 당시 가장 활발한 무역항이었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일본 야요이 시대의 왜계토기르 비롯해 낙랑토기와 한문화, 중국 동북지역의 토기등 다양한 문화가 확인된다. 한편 내륙 지역에서는 창원의 다호리 유적에서 100기 이상의 널무덤이 발굴되었는데, <창원 다호리 집단>이라고 명명된 이들이 그 주인공들이다. 이 곳에서는 중국 한대의 청동거울가 동전, 철기, 칠기, 왜계토기등 국제적인 유물들이 확인되었다. 이 집단은 변한의 중심으로 성장한 것으로 보이는데 2세기 이후에는 아무것도 확인되지 않고 있어 이후 이 집단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미궁에 빠져 있다고 한다. 오늘은 가야 성립 이전의 시기부터 가락국(금관가야), 가라국(대가야)에 이르기까지 외국과 활발한 교류를 했음을 보여주는 유물들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덩이쇠

고대 사회에서 철을 다루던 기술은

첨단기술에 속했다.

4-5세기의 가락국은

철 수출의 중심지였다.

 

 철기 만드는 도구인

끌, 집게, 망치

가야, 4세기

 

 왜계토기(야요이계)

기원전 2-1C

사천 늑도 유적은 가야 건국전에

남해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교역항으로

일본 야요이 토기를 비롯해

한나라와 중국 동북지역의 토기가 출토되었다.

 

 칠그릇

한나라, 기원전 2세기

창원 다호리집단의 유적에서 출토되었다.

 

 청동 세발솥

중국 한나라에서 1세기경 제작된 것으로

3세기 가락국 유적인

 김해 양동리 322호묘에서 출토되었다.

 

 오르도스형 동복(청동솥)

네이멍구 지역 기마민족의 대표적인 유물이다.

4세기 가야 유적인 대성동47호묘에서 출토되었다.

국립 김해 박물관소장

 

파형 (바람개비 모양) 동기

일본 고분시대 유물로 방패나 화살통을

장식하는 청동 꾸미개로 추정한다.

4세기 가야 김해 대성동 13호묘에서 출토

 

뚜껑, 6세기

고령에서 200km 떨어진

강원 동해 추암동에서 발견된

가라국의 토기 (왼쪽)

서기 562년 가야 멸망후

강제 이주당한 유민들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오른쪽은 북 고령에서 출토된 가야토기

 

2-3세기 가락국 지배자의 무덤인 김해 양동리 유적에서는 일본 규슈지역의 청동거울과 청동창, 중국의 청동거울과 청동솥, 서아시아 계통의 유리 금박구슬등이 나왔다. 4세기에 들어가면 교역의 폭이 더욱 넓어져 이 시기의 대성동 고분에서는 왜의 중심부 기나이 지역의 바람개비 모양 동기와 통모양 동기, 중국 서진의 허리띠장식, 북방 선비족 계통의 말갖춤, 서역의 유리그릇까지 출토되었다. 한마디로 국제 교역의 꽃을 피운 셈이다. 지금으로부터 천육백년도 더 된 옛날에 말이다. 특히 날개달린 금동관, 오르도스형 청동솥은 아름다운 예술품으로서, 또 문화의 흐름을 추적하는 단서로서 각각 의미가 깊다. 그런 이유로, 가야 멸망후 강원도 동해에서 발굴된 가라국 유민들이 사용하던 토기는 허망한 역사를 증언하는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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