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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 문화재

<국립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이집트실 1

by *Blue Note*

<국립중앙박물관 이집트실>

 

국립중앙박물관 3층에 있는 세계문화관을 찾아가면 이집트실을 관람할 수 있다.  국내 최초로 상설 이집트실을 조성한 것이다. 이러한 기획이 가능했던 것은 외국 박물관의 수장고에서 잠자고 있던 유물들을 임대했기 때문이다. 전시된 유물들은 미국 브루클린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집트 유물들을 장기 임대 방식으로 대여한 것이다. 앞으로 2년간은 상설전시에 준하는 방식으로 이집트실에 전시되어 있는 멋진 유물들을 관람할 수가 있다. 몇 차레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국립중앙박물관 이집트실에 있는 유물들을 나누어서 소개해보려고 한다. 오늘이 그 첫번째가 되겠다.

목걸이, 선왕조 BC 3850-3500 (좌)

232개의 구슬로 만들었다

가장 큰 팬던트는 황갈색 석영이다.

스카라브가 달린 팔찌, 중왕국 BC 1938-1875 (우)

녹색 장석으로 만든 풍뎅이 모양의 스카라브는

태양신을 상징한다.

나머지는 원형 또는 계란형의

자수정 구슬을 꿰어 만들었다.

 

동물이 그려진 꽃병

BC 3300-3100

악어 또는 이집트 몽구스로 추정되는 동물이 그려져 있다.

토기에 채색

 

늪지대 풍경

제5-6왕조, BC2500-2170

무덤돌에 새긴 부조이다.

파피루스로 만든 배를 타고 물고기를 잡는 사람이 보인다.

부조 왼쪽 아래부분에

새끼를 낳고 있는 하마는 다산을 상징한다.

석회석, 안료

 

페피 2세의 병

이집트인들은 식물과 동물의 기름으로

보습제와 클린저등을 만들었다.

고왕국 BC 2288-2194

설화 석고

 

주걱모양 인형

뒷면에 여성의 수호자인

하마 (타웨레트 Taweret)가 새겨져 있고

앞면에는 삼각형 모양의 음부가 표현되어

다산과 순산을 기원하는 물건으로 생각된다.

중왕국, BC 2008-1630

나무에 채색

 

우유 용기

여성의 팔, 허리, 가슴 모양의 점토를

표면에 붙혀 장식한 항아리다.

<에버스 의학 파피루스>는 모유를 크림이 뜰때까지

병에 담아 보관했다가 아픈 곳에 바르면 좋다는 기록이 있다.

신왕국 BC 1539-1478

토기에 채색

 

베스(Bes 난장이 사자)와

타웨레트(Taweret 하마)가 달린 목걸이

베스는 아이들의 수호신이고

타웨레트는 출산하는 여성들의 수호신이다.

이집트인들은 이러한 목걸이가

임신한 여성을 보호해준다고 믿었다.

신왕국 BC 1539-1292

 

하토르가 있는 거울

손잡이에 미의 여신인

하토르가 표현되어 있다.

청동으로 만들었다.

신왕국 BC 1539-1478

 

파디마헤스

파디마헤스는 조각상의 주인공이다.

인물상을 신전의 바닥에 놓음으로써

망자가 신들을 위한 의례에 

영원히 참석할 수 있도록 하였다.

BC 680-650

화강 섬록암

 

목걸이

후기 왕조시대에는

그물처럼 생긴 목걸이가 등장하는데

갑옷처럼 망자를 보호해주는

주술적 의미를 가진

미라 싸개의 일부로 사용되었다.

BC664-332

 

앉아있는 와제트

와제트는 코브라의 모습으로 표현되다가

후기시대에 와서 사자머리 모양을 한

여성으로 자주 묘사된다.

태양신 레(Re)의 딸 중 한명을 재현한

이 청동상은 이집트 몽구스의 미라를 보관하는데 사용되었다.

와제트와 마찬가지로 몽구스도

태양신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후기왕조 BC 664-332

 

오시리스

지하세계의 왕이다.

왕의 표식인 굽은 지팡이와 도리깨를 든

미이라의 형상을 하고 있다.

후기왕조 BC 664-525

청동, 금박

 

뚜껑달린 카노푸스 단지

미이라의 장기를 보관하던 단지다.

후기왕조 BC 664-525

 

고대 이집트의 연표

 

언제부터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박물관에서 유물에 대한 설명을 볼 때, 제작시기를 늘 유심히 보는 습관이 생겼다. 우리의 문화재가 아닌 외국 유물을 관람할 때 특히 그렇다. 그러면서 가령 기원전 3세기라고 하면 '우리는 당시 원삼국 시대로 토기가 대표 유물인데 중국의 경우 한나라 초기, 일본은 야요이 시대구나' 라고 하면서 '그 때 서양에서는 로마와 카르타고 간의 포에니 전쟁이 시작되었던 때구만' 이렇게 이해하는 식이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기원전 3-4천년전을 넘나드는 이집트의 유물들은 비교할 대상이 별로 없다. 하긴 인류문명의 발상지이니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일 것이다. 중국이나 메소포타미아 정도가 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유물의 완성도, 정교함, 규모등도 압도적이다. 거기에 독특한 세계관, 내세관은 이집트 문명을 규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므로 당시 이집트인들의 생각이 투영된 아름다운 유물을 만나는 일은 즐거움을 넘어서는 어떤 특별하고도 감동적인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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