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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 문화재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국립 중앙박물관 특별전

by *Blue Note*

<한겨울에도 변치 않는 푸르름>  국립 중앙박물관 특별전 : 세한

 

추사의 <세한도>는 2020년에 비로소 국립박물관에 자리를 잡는다. 세한도만큼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그림도 없을 것이다. 추사가 그림을 그리게 된 당시의 사연에서부터 마지막 개인 소장자였던 손창근 선생이 국립박물관에 기증한 최근까지 수많은 사건과 이야기들이 이 그림 속에 담겨 있다. 이미 대중에게도 많이 알려진 이야기이므로 아주 간략하게 소제목 형식으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추사, 제주도로 유배되다 / 제자 이상적이 청나라에서 구한 귀한 책을 추사에게 보내다 / 유배 간 스승을 잊지 않고 책을 보내준 제자의 마음에 감동하다 / 세한도 탄생 / 추운 겨울이 되어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르름을 안다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야 歲寒然後知松柏之後彫也) / 일제 강점기 추사 연구가인 후지쓰카 지카시가 세한도 소장 / 1944년 손재형이 후지스카로부터 세한도 반환 성사 / 손세기 손창근 소장 /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  서예가 손재형이 막무가내로 한 달간 후지쓰카 집 앞에서 세한도 반환을 설득했을 때, 처음 완강히 거부하던 후지츠카가 그의 진심에 감복해 아무런 조건 없이 돈 한 푼 받지 않고 세한도를 내주었다는 일화, 반환 석 달 후 도쿄에 있던 그의 집이 미군의 폭격을 받아 수많은 책과 자료가 불타 없어진 상황에서 세한도는 극적으로 살아남았다는 사실 등 정말 드라마 같은 일들이 이 그림의 역사다. 이제 손창근 선생이 국가에 기증함으로써 세한도를 국립박물관에서 볼 수 있게 되었으니 해피앤딩의 끝을 본 듯하여 감격스럽고 감사한 마음이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처음 맞닥뜨리는 영상물이 있다.

영화제작자 겸 미디어 아트 작가인

장 줄리앙 푸스의 7분짜리 영상,

<세한의 시간>이다. 

 

세한도 두루마리

 

김준학 (이상적의 제자 김병선의 아들)이

세한도 두루마리에 쓴 글 

 

세한도

김정희, 1844년

국보 제180호

 

그림 첫 부분부터 보자.

세한도라는 제목과 함께

<우선시상>이라는 글이 눈에 띈다.

우선은 이상적의 호, 

그러니까 이 글은 

이상적은 감상하시게나... 라는 의미

 

물기가 거의 붓에

진한 먹을 묻혀

거칠게 그려 (갈필)

메마름과 쓸쓸함이 묻어난다.

 

우측 하단의 인장 글씨는

장무상망

오랫동안 서로 잊지 말자는 뜻이다.

 

세한도 두루마리에는

당대 조선과 청나라 문인들의

감상글이 빼곡하다.

그림과 감상평까지 합치면

길이는 14미터에 이른다.

 

김정희가 사용한 인장

조선 19세기

예산 김정희 종가 소장

 

김정희 초상

허련, 조선 19C 중반

손창근 기증

 

불이선란도

김정희, 조선19C

손세기 손창근 기증전에서

이미 실견했던

추사의 대표작이다.

 

김정희가 따라 쓴 옛 예서

천정궁 박물관 소장

 

손재형, 1965년

행서 편액 해상풍정

국립광주 박물관

 

영상물 <세한의 시간>은 이방인의 눈으로 해석한 추사의 삶과 예술을 담았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웠다. 그가 유배 생활을 했던 제주도의 풍광 속에 추사의 절망과 고통, 성찰의 과정을 담았다고 한다. 추사에 대한 헌정 영상이 셈이다. 세한도는  우리나라 문인 4인과 청나라 문인 16인의 감상 글과 함께 두루마리로 꾸며졌다.  당시 추사의 학문과 예술에 대한 위상이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조선과 청나라 지식인 사이의 교류도 짚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세한도는 마른 붓에 진한 먹을 묻힌, 다시 말해 갈필로 그린 그림이다. 원래 추사의 작품 중 갈필은 없다고 한다. 이에 관해서는 추사가 유배길에 전주의 서예가인 창만 이삼만의 갈필을 혹평했던 일화도 있다. 유배 생활의 곤고함과 쓸쓸함이 내면을 성숙시키고 자신의 학문과 예술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했을까. 그는 뻑뻑하고 메마른 화법으로 세한도를 그려냈다. 하긴 우리가 익히 아는 추사체도 제주도 유배생활 중에 완성이 되었으니 내적 성숙을 위해서는 결핍이 필요한 것 같다. 비슷한 예는 조선의 명필 이광사에 대한 추사의 평가에서도 확인된다. 유배 전의 추사와 유배 후의 추사는 분명 다른 인간이었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추사의 인품을 흠모하지는 않는다. 나에게 추사는 재승박덕의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유배지에서 돌아온 추사에게 보다 정과 연민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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