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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 문화재

<전북 익산> 국립익산 박물관 : 무왕의 꿈

by *Blue Note*

전북 익산 가볼 만한 곳 : 국립 익산 박물관

 

<전북 익산에도 국립박물관이 있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 쪽 계통에서 일을 하거나, 혹은 우리 문화재에 특별히 관심이 많지 않다면 처음 듣는 소리일 가능성이 높다. 익산 박물관은 미륵사지 5층 석탑이 있는 금마면 기양리에 있는 국립 박물관이다. 흔히 백제를 한성시대, 웅진(공주) 시대, 사비(부여) 시대로 나누는데, 백제 무왕은 사비에서 익산으로 천도를 계획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다시 말하면 익산은 백제의 마지막을 묵묵히 지켜본, 문화적으로는 완숙한 절정의 수준을 구가하던 시절의 새로운 신도시였던 셈이다. 그러니 이 곳에 국립 박물관을 건립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러므로, 이 포스팅 첫 문장은 다음과 같이 바꿔야 한다. <전북 익산에는 당연히 국립박물관이 있다>.

국립 익산박물관

 

미륵사지 오층 석탑과 절터 / 미륵사는 백제 무왕 때 창건되어 고려 때까지 성황을 이루다 조선 중기 이후 폐찰 된 것으로 추정된다. 

 

연꽃무늬 수막새 (3.4) 익산 왕궁리 / 수부 글자를 찍은 기와 (5익산 왕궁리, 6-7부여 관북리)

 

기와 / 중부을와(1 익산 왕궁리), 복순(2 익산토성) 

 

 

손잡이 달린 단지와 뚜껑

 

특수 토기와 등잔

 

소조 천부상 / 익산 제석사지 폐기장 출토

 

전시장 내부

 

청동방울 & 금동제 여래입상 / 통일신라, 국보 제123호 / 익산 왕궁리 오층 석탑

 

금제 사리 내함 / 통일신라, 국보 제123호 / 익산 왕궁리 오층 석탑 출토

 

금과 은으로 만든 금강경 / 왕궁리 오층 석탑 지붕돌에서 발견되었다. 금강경 (금강 반야바라밀다)을 은판에 새기고 금으로 도금하였다. 

 

대왕릉의 나무 널 / 발굴 당시 인골이 돌 방안에 안치되어 있었다. 조사결과 이 널의 주인이 무왕일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대왕릉의 돌방과 널 재현

 

수막새의 분포. 삼국의 수막새를 비교해 놓았다.

 

막새기와, 백제, 익산 왕궁리 출토

 

얼굴 모양 기와 (고려, 서승방지 상층) & 얼굴무늬 수막새 (통일신라-고려, 미륵사지) / 얼굴 무늬 수막새는 중국 남조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청동합 / 백제, 보물 제1991호

 

금동제 사리 외호자수정, 꽃 모양 금구슬, 금구슬, 유리구슬 / 백제, 서원 석탑 심주석 출토

 

금동제 사리 외호 (보물 제1991호) / 금제 내호를 넣을 목적으로 만들었다. 외호와 내호 사이에  유리구슬로 장엄하였다.  7세기 전반 백제 특유의사리 장엄 방식이라고 한다. 

 

보살 손 / 고려, 미륵사지

 

전시실 내부의 모습들

 

미륵사지는 이번 방문이 두 번째다. 미륵산(용화산) 자락이 병풍처럼 둘러선 넓은 터에 펼쳐진 미륵사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폐사지라는 설명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거대하고 넓었다. 풍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왠지 이 곳의 터는 좋은 기운이 많이 몰리는 그런 명당이라는 기분이 든다. 당시에 왔을 때는 마침 지척에 있는 국립 익산박물관이 공사 중이어서 관람하지 못했다. 아쉬움이 아주 컸었는데, 결국 그 아쉬움 때문에 다시 재방문하여 미륵사지와 석탑을 보게 되었으니, 지금 와서 생각하면 참 잘 되었던 일이다. 게다가 이번엔 지난 방문 때 관람하지 못했던 국립박물관의 사비시대 국보급, 보물급 문화재를 직접 볼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을 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무왕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안치되어 있던 나무 널, 그리고 재현된 돌방의 모습이었다. 서동요, 선화공주, 그리고 무왕... 백제의 재도약을 꿈꾸며 익산 천도를 도모했던 무왕이 이제 덩그러니 남은 나무 널조각 속에 조각난 인골로 남았다니 인생사 덧없음을 웅변하고 있는 듯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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