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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경상도

<경주 가볼만한 곳> 분황사 : 모전석탑과 약사여래입상

by *Blue 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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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의 고찰> 분황사 : 모전석탑 / 보광전 / 약사여래입상 / 석정

 

분황사는 교과서나 방송에서 봐서 비교적 익숙한 모전 석탑 (국보 제30호)이 있는 절이다. 아주 아주 오래전에, 그때는 아무런 감흥도 없이 그저 둘러본 이후로 실로 오랜만의 재방문이었다. 사실 분황사에 대해서는 모전 석탑의 이미지가 전부였다. 벽돌을 모방해서 만든 석탑이라는 것 외에는 그 때나 지금이나 아는 것이 없었다. 선덕여왕때 절이 창건되었고, 모전 석탑은 가장 오래된 신라 석탑이라는 사실은 이번에 알게 되었다. 지금은 아담하다 못해 다소 답답해 보이는 절 규모도 창건 당시에는 중문, 강당, 회랑, 그리고 3 금당을 갖춘 대가람의 당당한 사찰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의 모습도 아름답다. 석탑 너머 고졸한 절마당을 건너서 보광전과 그 안에 모셔진 약사여래입상 (보물 제2160호)을 보고, 석정의 조형미를 감상하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차분해짐을 느낄 수 있다. 같은 장소를 방문해 같은 대상을 마주해도, 어느 시기, 어떤 마음으로 대했느냐에 따라 각자 전혀 다른 걸 보고 느끼는 법이다.  

분황사 주차장

 

분황사 입구와 주변 담장

이상하게 일주문이 없다...

보통 절집과는 사뭇 다르다.

 

 

 

매우 아담한 절이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조선까지 이어진

수많은 전쟁으로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된 결과다. 

 

모전 석탑만 따로 찍어봤다.

흑회색의 안산암을 

벽돌모양으로 다듬어 쌓아 올렸다.

현재 3층이지만

원래는 7층, 혹은 9층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모전석탑의 사자상과 금강역사상

 

모전석탑 옆으로 석정이 있다. 

이 석정에는 신라 원성왕과 관련된

용의 설화가 깃들어 있다.

 

분황사 화쟁국사비부, 고려

원효 대사를 추모하는

비석의 받침돌이다.

윗면에 비석을 꽂아 세웠던

직사각형 홈이 있다.

 

보광전

 

보광전 내부

 

분황사 약사여래입상

3.45m의 거대한 금동불이다.

조선후기, 보물 2160호

 

분황사...

 

깊은 산속에 자리를 튼 산사도 아니고, 엄청난 규모의 전각도 없었지만, 분황사는 참 인상깊다. 잘 만들어진 작고 정교한 공예품을 보는 느낌이다. 낮은 담장을 둘러선 준수한 나무들, 특이한 석탑과 석정, 낙엽이 깔린 절집 마당, 유일한 전각인 아담한 보광전과 그 안에 자리 잡은 커다란 약사불... 17세기 불상이 대부분 소조인데 비해 이 약사불은 엄청난 양의 구리로 만든 동조(銅造) 불상으로 현존하는 최대 금동 약사불이다. 한 손에 약병을 들고 서있는 부처님의 모습이 내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묘한 느낌이었는데, 나중에 이 약사불에 대한 설명을 읽고 나서 그 느낌의 근원을 알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우람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이와 달리 둥글고 통통한 얼굴에 어깨가 왜소해 동안(童顔)의 형태미를 보여준다. 특히 어린아이처럼 앳돼 보이는 이목구비는...(후략)>. 마당 한 구석에 놓인 석정도 참 아름다웠다. 용의 설화도 재미있지만, 실제로 우물에서는 훼손된 불상이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조선시대 폐불의 정도와 불교 탄압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번 답사에서 확인하지 못하고 빼먹은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분황사 당간지주다. 사찰 내에 있지 않아 놓친 셈이다. 신라 시대의 분황사의 크기가 지금보다 훨씬 컸던 대가람이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유물이기도 한 것이다. 결국 분황사 당간지주와의 대면은 다음으로 미루어야 할 것 같다. 지난번 갑사에서도 당간지주를 못 보고 지나쳤었는데 (그것도 두 번씩이나, ㅠㅠ) 이번엔 아예 생각도 못하고 있다가 빠뜨렸다. 나름 꼼꼼한 성격인데, 이젠 그렇지도 않다는 걸 자인해야겠다, ㅋㅋ. 당간지주는 다음 방문에서 분황사 앞 청보리밭과 함께 봐야겠다. 황룡사지와 함께 엮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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