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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경기도

<조선 왕릉> 홍유릉 : 고종의 홍릉과 순종의 유릉

by *Blue Note*

<남양주 가볼만한 곳> 홍유릉 : 고종의 순종의 황제릉

조선왕조의 왕릉은 그 역사적 가치와 독특한 건축양식을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우리 민족 문화의 자랑이다. 더우기 서울과 경기도에 주로 산재해 있는 조선 왕릉은 모두 자연과의 조화와 풍수지리에 기반한 빼어난 입지로 소위 말하는 명당중에 명당이다. 홍유릉은 군주로서 구한말 조선의 마지막을 몸소 겪어내야만 했던 두 임금, 고종과 순종의 왕릉이다. 엄밀히 말하면 대한제국을 선포한 후 황제의 자리에 올랐기 때문에 고종과 순종은 대한제국의 황제이고, 따라서 능도 왕릉이 아닌 황제릉으로 보아야 옳다. 실제로 홍유릉은 왕릉이 아닌 황제의 능으로서 격식을 갖추어 조성되었기에 기존의 선대의 왕릉과는 여러면에서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이 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대한제국을 선포할 당시, 이 나라는 이미 스스로를 지킬 국력이 없었고, 세계정세와 외교에 무지하여 결국 일본에 통째로 나라를 헌납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착찹한 마음으로 홍유릉을 다녀온 날은 애꿏게도 화창하기 이를데 없는 날씨였다.

오른쪽에 보이는 입구를 통해

홍유릉으로 들어온다.

 

 

 

왼쪽으로 가면 고종과 명성황후의 능인 홍릉

우측은 순종과 순정효황후의 능인 유릉이 나온다.

 

 

 

연지

기존의 천원지방과는 다른 양식이다.

 

직사각형이어야할 연못의 경계가

홍유릉 연지의 경우는 원형이다.

 

 

 

연지를 지나 조금 올라가면

홍릉으로 가는 홍살문이 나온다.

 

 

 

홍릉

고종 황제와 명성황후의 능이다.

여느 조선 왕릉과 달리

황제의 능인 홍릉은

신도주변에 석물이 늘어서 있다.

정자각 대신 팔작지붕으로 된

일자형 침전이 있는 것도

황제릉이기 때문...

 

 

홍릉 침전으로 이르는 길 양편으로는

다양한 석물들이 도열해있다.

말, 양뿐 아니라 해태, 낙타, 사자,

그리고 코끼리까지 있다.

황제의 위상을 고려한 것이겠지만

어딘지 낯설고 애잔하다.

 

 

 

홍릉의 무인석과 문인석

상당히 키가 크다

 

 

침전에서 바라본 홍릉의

석수와 홍살문, 신도...

 

 

 

홍릉의 비각(왼쪽)과 침전(오른쪽)

 

 

홍릉

고종과 명성황후의 합장릉이다.

그러나 정작 명성황후의 시신은 없이

생전에 입었던 옷만 부장되어 있다.

 

 

 

홍릉 왔던 길을

다시 되짚어 유릉으로 갈 수도 있지만

작은 숲길을 따라 가보기로 했다.

 

유릉

순종의 능이다.

 

 

 

날씨는 맑고

사람은 없어 고즈넉하다.

 

 

 

순종의 능인 유릉은

홍릉과 거의 흡사하게 배치된 

석수, 문인석

침전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 발치로 보이는 유릉

순종, 순명황후, 순정효황후가 함께 모셔진

조선 왕릉 유일의 동봉삼실의 합장릉이다.

 

 

 

유릉 가까이에 있는 재실

홍유릉은 대한제국 황실 (왕실이 아닌)의 능이다. 당연히 왕릉보다 더 규모가 크고 황제로서의 위엄을 나타내는 석물들도 다양하다. 하지만 그건 그야말로 껍데기에 불과하다. 황제가 다스리는 제국이지만 당시 대한제국은 제대로된 국가에 걸맞는 위상을 가지지 못했고, 열강의 먹이거리로 전락해 갖은 수모를 당하다가 간판을 내리고 일본에 합병되고 말았으니까. 그래서 더욱 황제의 예로 모신 홍릉과 유릉이 덧없고 황량해보이는 것이다. 나라를 빼앗긴 군주가 묻혀있는 홍유릉은 '가봐야 하지만 다시 가보고 싶지 않은' 곳이다. 다른 조선왕릉에서와는 다른 착잡함이 묻어난다. 하지만 아픈 역사도 당연히 우리의 역사임에 틀림 없다면 있는 그대로 품어야 할 것이다. 일본에 인질로 끌려간 황태자 영친왕, 그리고 항일정신으로 독립운동을 모색한 의친왕, 비운의 황녀 덕혜옹주가 잠들어 있는 능은 다음 포스팅에서 다루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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