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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제주도 우도

<제주도 구석구석> 제주의 미소 : 서자복과 동자복

by *Blue 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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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향토문화재> 복신미륵 : 서자복, 동자복 

 

이번 제주 여행은 조금 특별하긴 했다. 준비를 하면서 몇군데 둘러볼 곳을 정했는데, 그동안 제대로 살펴보지 않았던 향토문화재나 미술관을 여행 리스트에 우선적으로 올려놓았다. 그 중 첫날 가장 먼저 찾아보기로 한 것이 서자복, 동자복이다. 정식 명칭은 각각 복신미륵(福神彌勒) 서자복과 복신미륵 동자복이다. 굳이 미술사학적으로 이름을 붙히자면 석불입상이라 할 수 있다. 즉 돌로 만든 부처님의 입상인 셈인데, 이게 우리가 통상 알고 있는 불상과는 많이 다르다. 오히려 제주의 상징인 돌하르방과 많이 닮았다. 사실 돌하르방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겠으나, 오늘의 주인공인 서자복, 동자복과 비교해서만 이야기 하자면 신앙적 의미가 크지 않은 돌하르방에 비해 서자복과 동자복은 부처, 그 중에서도 미래의 부처인 미륵불이라는 점이다. 크기도 일반적으로 돌하르방에 비해 훨씬 크다. 자료를 찾아보니 돌하르방이 21기 정도 있는 것에 비해 복신미륵은 단 2기만이 있는 듯 하다. 복신미륵에 대해서는 자세한 기록이 없어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만 할 뿐이라고 한다. 이 두기의 미륵은 옛 제주읍성의 서쪽과 동쪽에 세워졌다. 서쪽인 용담동에 있는 것이 서자복, 동쪽인 건입동에 있는 미륵이 동자복인 셈이다. 두 미륵은 서로 마주보고 서 있는데 차로 이동해보니 2.6 km 정도의 거리였다. 보물찾기 하듯 두 분의 미륵 부처님을 찾아 나섰다.

 

 

먼저 서자복을 보러 용화사를 찾았다.

절이라기 보다는 그냥 팔작지붕의 한옥처럼 보인다.

단청도 없이 붉은 기와를 얹었다.

멀리 보이는 석상이 바로 서자복이다.

 

용화사 경내

정면에 보이는 건

사무실 혹은 굳이 말하자면 요사체..?

 

부처님을 모신 법당

일반적인 절집과 달라서

조금 당혹스럽기는 하다.

 

서자복은 법당을 마주하고 우측에 있다.

현무암으로 만든 거대한 돌미륵이다.

 

 

 

높이 2.73m에 이르는 거석이지만

순하고 부드러운 느낌이다.

우측의 하얀 석물은 남근석으로

이곳에 치성을 드리면 아들을 얻는다고...

 

 서자복이 있는 용담동

 

두번째 목적지인 동자복

동네 주택과 담을 맞대고 있다.

 

안내판 뒤의 동자복

담너머로 나를 건너다보는 듯 하다

 

 

입술은 음각으로만

단순하게 표현하였다

음전하고 다소곳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동자복은 서자복에 비해

더 확실하고 웃고 있다, ㅋㅋ

높이는 2.86m

 

동자복에서는

김만덕 객주가 내려다보인다.

정조때 기생 출신인 김만덕은

객주를 운영해 번 돈으로

흉년에 굶주리던 제주 사람들을 구제했다.

 

건입동 큰길가에 있는 동자복

주변에 김만덕 기념관과 객주가 있다.

 

돌하르방이 다소 무뚝뚝하게 느껴지는 건 부리부리한 눈망울과 커다란 코, 그리고 꾹 다문 입 때문일 것이다. 그에비해 미륵 부처인 서자복과 동자복의 얼굴은 온화하다. 수 킬로미터의 거리를 두고 서로 마주보고 서 있는 이 두 부처님은 당연히 많이 닮았다. 커다란 돌미륵 앞에 마음을 열고 서면 넉넉하고 푸근한 느낌이 나를 감싸 안아준다. 얼굴에선 천진한 장난기도 묻어난다. 그러나 그렇다고 서자복과 동자복이 모든 면에서 같은 느낌인 것은 아니다. 흔히 서자복은 남성, 동자복은 여성으로 인식되는데, 그런 생각으로 감상하면 과연 그러하다. 국립제주 박물관 야외 전시장에는 동자복과 서자복를 복제한 석물이 전시되어 있다. 하지만 진정 마음의 눈으로 복신미륵을 보고 싶다면 용담동과 건입동을 찾아 진품을 만나보기 바란다. 이러저러한 이유를 다 차치하고서라도 이 두 미륵이 지켜왔던 그 자리가 제주 사람들의 한숨과 눈물, 기쁨과 염원이 밀물과 썰물처럼 끊임없이 교차하던 바로 그 삶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제주의 미소'라고 이름붙혀도 좋은 그 미소속에는 제주 사람들의 얼굴이 조각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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