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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경기도

<강화도 여행> 고려궁지 : 옛 고려의 왕궁 터

by *Blue 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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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가볼만한 곳> 고려궁지

 

몽고의 침략에 맞서서 고려왕조는 대몽항쟁을 시작한다. 고려 고종이 천도한 1232년부터 39년간 왕실과 정부가 있던 곳이 강화도다. 고려는 강화 천도 2년후인 1234년 궁궐과 관아의 건축을 모두 마친다. 당시에는 정궁외에도 행궁, 이궁등 여러 궁궐과 건물들이 있었을 것이고 그 규모도 상당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 남아있는 고려궁지의 크기는 매우 작다. 고려궁터의 정확한 범위와 위치는 파악되지 않은 상태라고 한다. 1270년 환도할 때 모든 건물들을 철거했기 때문이다. 왼쪽 잔디밭 너머로 둘러쳐진 담장 밖의 넓은 지역이 모두 행궁터였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지금 궁터에 들어서 있는 동헌과 이방청 등은 조선 시대 강화유수부의 건물들로 고려궁과는 무관한 것이다.

정문인 승평문

개성 만월대와 같이 승평문으로 편액을 걸었다.

조선시대에 새로 새운 건물이다.

 

승평문을 통과하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물이

강화유수부 동헌이다.

전체적으로 특별한 장식이나 구성이 없는

조선시대 소박한 건물이다.

 

강화유수부 동헌은 인조때 지었고

몇차례 개수를 거쳐

1977년 복원·수리하였다.

명위헌(明威軒)이라는 현판은

영조때의 명필인 백하 윤순이 썼다.

 

외규장각

아쉽게도 보수공사중이었다.

외규장각은 정조때 세워졌다가

병인양요때 국서들이 약탈당하면서

건물도 불태워졌었다.

 

수령 400년된 회화나무만 서있는

고려궁지

담장너머 넓은 지역까지

왕궁의 건물들이 들어서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종각과 강화동종

조선 숙종때 만들어져

원래는 강화산성 남문에 있었다고 한다.

 

강화유수부 이방청

이방이 근무하던 집무실로

조선 중기의 관청건물이다.

 

고려궁지 안쪽에서 바라본 승평문

 

사실 고려궁지를 둘러본 것은 강화도로 수도를 옮기고 39년동안 몽고에 맞섰던 고려의 지난한 투쟁의 역사를 짚어보고 싶어서였다. 아무것도 남지 않고 경계마저 불분명한 왕궁터는 과연 짐작대로 허전하였다. 고려에 이어 등장한 조선왕조의 국서들을 보관했던 외규장각마저 보수공사중이어서 아쉬움은 더했다. 하긴 외규장각도 병인양요때 불타고 현재의 건물은 이후 다시 지은 것이고 그 안에 보관했던 수많은 귀중한 책들은 모조리 약탈당했으니 이 곳 고려궁지는 우리 민족의 투쟁과 수난의 역사가 고스란히 배어있는 곳이다. 힘이 없어 국토가 유린되고 백성이 고초를 겪은 치욕을 되풀이 하지 않으려면 실패의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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