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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충청도

<충남 부여> 무량사 : 극락전 / 오층석탑 / 영정각 / 영산전

by *Blue 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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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 여행> 무량사

 

꽤 오랜만의 절집 방문이다. 우리나라 불교사원의 특징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 중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절집이 자리한 위치일 것이다. 중국이나 일본의 절들과는 달리 한국의 절들은 산에 자리잡은 산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산사를 제대로 이해하고 느끼기 위해서는 건축 문화재로서의 사원만을 따로 때어놓고 볼 것이 아니라, 가람배치와 함께 주변 산과 계곡을 아우르는 큰 그림으로 이해해야 한다. 무량사도 산사다. 하지만 깊은 골짜기, 높은 봉우리에 자리 잡은 절이 아니라, 부드럽고 포근한 만수산을 배경으로 두르고 자리잡았다. 통일신라 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량....  없을 무(無)에 헤아릴 양(量)이다. 헤아리 수 없는, 측정할 수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 절의 본전 이름은 극락전이다. 그러니 당연히 모시는 주불은 아미타불이 될 것이고... 극락 서방 정토의 아미타불은 무량하다. 그리고 무량사는 부여에 있다.

무량사의 일주문

<만수산 무량사> 현판이 보인다.

 

일주문 지나 조금 걸어올라가면

천왕문이 나온다.

 

천왕문에서 보는

석등, 오층석탑

그리고 극락전

모두 보물로 등록된 국가지정 문화재들이다.

 

천왕문을 통과하면

우측에 범종각이 있다.

 

석등 (보물 제 233호)

오층석탑 (보물 제 185호)

극락전 (보물 제 356호)

 

 오층석탑

고려 전기의 탑이다.

 

무량사 극락전

이 절의 본전이다.

보기 드물게 2층으로 된 전각이다.

조선 중기에 건립되었다.

 

극락전 내부에 모셔진

소조 아미타여래 삼존좌상

보물 제 1565호

 

명부전

극락전을 등지고 섰을 때

오층석탑 왼편에 있다.

 

 삼성각(좌)과 청한당(우)

특히 요사체인 청한당은 내 마음을

쏙 빼앗아 갔다.

 

 영정각

김시습의 초상 (보물 제1497호)을 모셨다.

생육신의 한사람인 김시습은

승려가 되어 전국을 떠돌다

무량사에서 남은 생을 마쳤다.

 

 영산전

이 건물은 영가산에서 석가가 설법한

영산회상을 상징하는 건물이다.

팔상전이라고도 한다.

소박한 익공 양식으로

조선 후기의 건축적 특징을 보여준다.

 

 영산전에서 바라본

무량사의 경내

 

 무량사의 가람배치

 

모든 절은 자기만의 얼굴과 성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절집을 다녀도 느낌과 울림이 다 다르다. 무량사는 뭐랄까, 아기자기하고 이야기거리도 많은, 너무 규모가 크거나 그렇다고 초라하지도 않은, 슬며시 다가와 말을 걸 것 같은 그런 이미지의 사찰이다. 그래서 구경하는 동안 심심하지 않으면서 마음도 편하고 즐거웠다. 드문 인적, 나른한 봄날씨도 그런 느낌에 한 몫 했을듯 하다. 무량사 오층 석탑을 처음 실견했을 때의 인상은 부여 정림사지 오층 석탑과 매우 닮았다는 것이었다. 물론 아마추어의 서투른 평가이고, 또 두 탑은 세워진 시기도 차이가 많아 맞지 않은 부분도 많다. 하지만 안정적이고 우아한 모습, 지붕돌의 처마 끝 선이 살그머니 올라간 모습등은 백제탑이 가진 DNA다. 무량사의 많은 전각들 중에서 영산전도 빼놓을 수 없다. 생육신 김시습의 야복 (야인이 입는 옷) 초상화를 본다는 것, 그것도 박물관이나 무슨 기념관이 아닌, 그가 승려로 생을 마감했던 무량사에 그를 위해 지은 영정전에서 직접 봤다는 데에 의의와 감동이 있었다. 더구나 그 그림은 야복 초상화의 걸작으로 그 자체로 소중하고 아름다운 문화재이다. 유물이나 문화재가 박물관에 박제되어 전시되는 것이 아니라, 있어야 할 제 자리에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국립중앙박물관 야외 전시실에 있는 수많은 탑과 탑비들은 원칙적으로 본래의 자리로 되돌리는 것이 좋지 않겠나 한번 생각해봤다. 뭐 물론 아마추어 내 맘대로, 아무 책임감이나 현실적 고민 없이 하는 말이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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