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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생각들

<방자전> 영화속 등장 인물들의 캐릭터

by *Blue Note*

 

<방자전> 영화속 등장 인물들의 캐릭터


                                                  감독 : 김대우  /  출연 : 김주혁, 조여정, 류승범, 송새벽

요즘 방자전의 흥행몰이가 한창이다. 기존의 전통적인 춘향전의 기본 설정을 비틀어 새롭게 구성한 점이 우선 신선하다는 평이고, 거기에 춘향과 방자의 과감한 노출신이 흥행 성공의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영화에 대한 전문지식이 전무한 필자가 이러쿵 저러쿵 영화평을 하는 것은 그럴만한 능력도 안되거니와 바람직한 일도 아닐 것이다. 다만, 평범한 영화팬의 한사람으로서 방자전을 구성하고 있는 주요 인물인 방자와 춘향, 이도령, 그리고 변학도를 중심으로 그들의 심리를 들여다 보고싶은 욕심은 있었다.

* 방자 (김주혁)
이 영화에서 가장 비현실적인 인물이다. 바꿔 말하면 가장 순수하고 착하다. 처음 춘향을 보고 연모의 마음을 품게된 방자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초지일관, 일편단심, 춘향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관객에게 유감없이 선보인다. 보기에 따라서 '이래도 감동 안 먹을래?' 하고 막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춘향이 자신의 신분 상승을 위해 이도령과 모종의 계약을 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방자를 물먹이는 지경에 이르러서도 방자의 사랑은 조금의 동요도 없다. 솔직히 좀 짜증난다. 남자로서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고... 남자가 사랑에 빠지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여자쪽에서 적어도 배신을 때리지는 않는다는 최소한의 전제가 충족되야 가능한 것 아닐까? 이 영화에서 춘향은 방자와 이몽룡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친다. 방자에게 먼저 몸을 허락하고도, 며칠 후  이몽룡을 방으로 끌어들여 몸을 섞는 춘향 (상놈 방자는 춘향과 몽룡의 합방이 끝날 때까지 마루에서 기다린다).  애초 춘향에 애정이 없던 이도령이야 그렇다치고, 오매불망 춘향을 사랑하고 정까지 통한 방자가 받았을 충격은 생각하기에도 끔찍하다. 그러나 우리의 방자, 고뇌의 모습이 없다. 춘향이에게 성질 한번 내지 않는다. 분노와 갈등의 시늉조차 없이 비현실적인 순정파의 길을 간다. 방자를 보면 짜증이 확 나면서 '뭐 저런 등신이 있나'라는 생각이 든다.  자기 여자를 빼앗긴 숫컷의 처절한 고통이 영화에서 전혀 표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감독에게 묻고 싶다. 왜 그랬는지). 이런 남자, 정말 드물다. 천연 기념물이다. 그래서 솔직히 별로 정이 안간다. 매력없다.

* 춘향 (조여정)
여우다. 거기다가 뻔뻔하기까지 하다. 춘향은 자기를 사랑해주는 방자에게 한편 끌리지만, 방자가 죽었다 깨어나도 가질 수 없는 양반이라는 신분을 가지고 있는 이몽룡 또한 놓치기 싫다.  양반이라는 타이틀은 단지 타이틀이 아니라 권력을 상징함은 당연한 것, 춘향은 이몽룡에게서 '신분상승'으로 가는 사다리를 본다. 영화 내내 춘향의 태도는 모호하다. 정말 방자를 사랑하는 건지도 헷갈린다. 상대에 대한 배려나 애틋함이 없기 때문이다. 그거 사랑 아니다. 그렇다고 춘향이 팜므 파탈의 카리스마를 보여주냐하면, 그것도 아닌것이 속물 이도령에게 무기력하게 휘둘리기 때문이다. 자기딴에는 머리를 좀 쓰는 것 같은데, 몽룡의 뻔히 보이는 술수에 쉽게 동의하고 이용당하고 만다. 양쪽을 기웃거리다가 이도령이 장원 급제를 하자 급격하게 그쪽으로 쏠린다. 결국 춘향은 방자를 버린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봤다. 허영심과 신분상승의 욕심은 있으나 머리 나빠서 우왕좌왕, 이리저리 치이다 자신을 전혀 사랑하지 않은 남자를 선택하고도 나름 만족해했던 예쁜 여자, 그게 방자전의 춘향이다. 이런 여자, 흔히 있다.



* 이몽룡(류승범)
머리좋고 집안 좋다. 소위 스팩이 빵빵하다. 세상에 주눅들 이유가 없다. 방자전의 이도령은 사랑을 꿈꾸지도, 믿지도 않는다. 오로지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 공부하여 장원 급제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중앙 정치에서 클 수 없다는 것을 간파하고 임금과 조정을 감동시킬만한 미담을 조작한다. 이 교활한 계획에 이용당하는 인물이 변사또와 성춘향... 영화에서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몽룡의 계획에 이용만 당하고 패가망신하는 가장 큰 피해자가 변사또이다. 물론 변학도라는 인물 역시 어느 한구석 이쁘게 봐줄 데 없는 사이코이긴 하지만... 변사또와는 달리 춘향은 이몽룡의 계획에 협조하는 댓가로 신분상승의 기회를 잡는다. 그리고 방자는 버려진다. 물론 영화에서 춘향이 몽룡을 협박하여 방자를 자기 곁에 두는데 성공하지만 공식적으로 (비공식적으로도) 춘향은 몽룡의 여자가 된다. 다소 오바인지 모르겠지만 권력욕이 강하고 권모술수에 능한 이몽룡의 얼굴위로 정치인, 검찰등 한국사회의 파워맨들이 어쩔수 없이 오버랩된다. 백성은 안중에도 없고 자신의 권력을 함부로 휘두르고 군림하는 자들은 동서고금을 통해 늘 있어왔다. 이몽룡 같은 인간, 흔히 있다.

* 변학도 (송새벽)
또라이... 무개념의 소유자다. 성도착증이 있으며, 정신적으로는 유아기에 머물러 있다. 미성숙한 인격에 유치함이 짝이 없다. 이도령처럼 욕망의 충족을 위해 계략을 꾸미거나 회유하는 법을 모른다. 무조건 직진, 고스톱으로 치면 못먹어도 무조건 고다. 변사또에게 있어서 여자에 대한 욕망은 권력에 대한 욕망과 같은 의미로 보이지만, 영화에서 이 부분이 크게 부각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더 많은 여자와 쉽게 자기 위해서 과거 시험 공부를 했다'는 변학도의 대사는 의미 심장하다. 조금 순화해서 말하면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감독이 어떤 의도로 이 대사를 넣었는지 모르겠지만, 따져보면 변학도와 같은 이유로 출세를 꿈꾸는 사람들은 현실에 많다. 변학도의 고백는 현대인들의 숨겨진 욕망을 다소 노골적으로 까발려 말한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런 면에서 이도령과 변학도는 같은 부류, 같은 과이다. 단지 이도령은 변학도보다 훨씬 위선적이고 교활한 인격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더 위험한 인물이다.

  

* 마영감 (오달수) / 향단 (류현경)
마영감은 여자 꼬시기의 달인이다. 마영감의 도움으로 방자는 춘향을 품게 된다. 하지만 마영감의 필살기라는 것들이 다소 설득력이 떨어져보인다. 툭치기, 뒤에서 보기등의 연애 기술은 억지스럽다 못해 다분히 작위적이다. 사람마다 다르게 느낄 수 있겠으나 '아하, 그렇구나' 하고 무릎을 탁 치게 하는 그런 공감이 부족하다는 이야기...  아뭏든 개성있는 조연으로 양념 역할을 톡톡히 해온 오달수라는 배우가 방자전에서 연기한 마영감은 뭔가 2% 정도 부족한 느낌이다. 향단은 방자의 사랑을 얻지 못한 불쌍한 여자다. 춘향에 비해 여성스러운 캐릭터다. 어수룩하고 약간의 컴플렉스도 있다. 착각도 잘 하는 편이어서 방자가 자기를 좋아했었다고 끝까지 믿는다 (혹은 믿고 싶어한다). 이몽룡과 타협해 신분 상승의 욕망을 채운 춘향과 달리 향단은 스스로 독립해 잘 나가는 주막의 주인이 됨으로써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에 복수한다. 향단에 점수를 주고 싶은 이유다.
 

* 사족
방자전은 '춘향을 사모하는 방자'라는 발칙한 설정으로 기존 춘향전의 내용을 살짝 비튼 영화이다. 춘향전은 본래 춘향과 몽룡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이다. 하지만 영화 방자전에선 방자의 순수한 사랑만 있고 춘향의 절개는 보이지 않는다. 예전에 본 '백설 공주를 사랑한 난장이'라는 뮤지컬이 생각난다. 설정은 비슷하지만 울림은 사뭇 다르다. 백설공주를 짝사랑한 일곱번째 난장이인 반달이가 백설공주에 대한 사랑을 가슴에 묻고 쓸쓸히 죽어간 후, 오랜 세월이 흘러 그 진심을 뒤늦게 알게 된 백설공주가 전율속에 반달이를 회상하는 앤딩 장면은 관객의 가슴을 사정없이 두드리는 무엇이 있었다. 스포일러가 되고 싶지 않아 결말을 이야기할 수 없으나, 방자전의 앤딩은 그만한 감동이 없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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