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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 문화재

<새 보물 납시었네> 두 거장의 작품 : 강산무진도와 촉잔도권

by *Blue Note*

 

국립중앙박물관 <새 보물 납시었네> : 이인문과 심사정

 

이번 <새 보물 납시었네> 특별전은 전체 규모는 말할 것도 없고, 전시된 각각의 문화재가 가지는 무게감 또한 상당하다. 그도 그럴 것이 모든 전시품이 국보나 보물 같은 국가 지정 문화재들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앞서 포스팅한 신윤복의 <미인도>, 그리고 오늘 소개하는 이인문의 <강산무진도>, 심사정의 <촉잔도권>은 이름만 들었지 일반인인 나로서는 직접 보기가 참으로 어려웠던 그림이다. 특히 <강산무진도>는 젊은 시절 읽었던 김 훈의 소설 제목이기도 해서 개인적인 감상과 추억이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 역작들을 눈앞에서 실견할 수 있다니... 마음이 설레었다. 과연 이인문과 심사정의 그림은 그 장대한 크기에 걸맞게 독립된 전시 공간에 잘 모셔져 있었다. 삼면 벽으로는 46억 화소로 스캔하여 프린트한 <강산무진도>가 거대한 옹성처럼 둘러싸고 있었다. 그리고 전시 공간 중앙에는 진품 <강산무진도>와 <촉잔도권>이 서로 나란히 아우라 넘치는 위용을 뽐내고 있는 풍경.. 가히 압도적이었다. 

강산무진도로 마감한 벽면

그림이 묘사한 공간속에 들어온 느낌이다. 

 

강산무진도의 시작부분

추사 김정희가 소장했음을 나타내는

인장이 찍혀있다. 

보물 제2029호

 

강산무진도

그림의 순서대로 촬영했다.

이인문, 19C초

 

대자연을 그린 산수화지만

인물도 360여 명이

묘사되어 있다.

강위의 배, 산속의 도르래,

물건을 운반하는 수레도 있다.

 

부벽준, 미점준 등을 포함해서

거의 모든 준법들이

이 그림 한폭에 사용되었다.

길이 8.5미터의 대작이 

소장자였던 추사의 인장과 함께

비로소 끝이 났다. 

 

촉잔도권

촉 나라로 가는 힘들고

장대한 여정을 그린 산수화다.

심사정, 1768년

보물 1986호, 종이에 담채

간송미술관 소장

 

촉잔도권 (좌)

강산무진도 (우)

 

이인문의 <강산무진도>는 5개의 비단을 잇대어 만든 화폭에 자연과 그 속에서 순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다양하게 표현한 대작이다. 화려하고 변화무쌍한 준법, 세밀한 인물 묘사가 일품이다. 그림 앞 뒤에 찍힌 인장을 통해 이 작품이 김정희의 소장품이었다는 재미있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남의 그림에 꼭 '내꺼'라고 도장을 찍어야만 했나 하는 생각은 든다. 그것도 엄청 많은 인장을 몇 개씩이나 꽉꽉 눌러서... 잠시 설명을 보자. [두루마기 오른편에 靜山ㅇㅇㅇㅇ, 김정희씨고정지인 (김정희가 감정하고 찍은 인장), 秋史를 찍었고 왼쪽 끝에는 자손영보(자손 대대로 전할 보물), 추사진장 (추사의 진귀한 소장품), 김정희인이 찍혀있다]. 하지만 소장자가 바로 그 '추사 김정희'니까 뭐 더 시비 걸 생각은 없다, ㅋㅋ. 이 인장으로 인해서 <강산무진도>의 가치는 한결 더 높아질 테니까...김홍도의 절친이었던 이인문은 김홍도의 그늘에 가려져 상대적으로 덜 평가되고 있다. 한국적인 미감이 부족하고 개성도 약하다는 지적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인문은 당시에는 최고의 화원으로 평가받았고, 지금도 김홍도에 비교해서 다소 평가절하되어 있는 상태일 뿐, 기량과 안목에 있어서 최고의 경지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에 비해 <강산무진도>와 나란히 전시된 <촉잔도권>의 주인공 심사정은 당대에도 팍팍한 삶을 살았다. 그의 가문은 조부의 과거 부정사건, 그리고 연이은 역모에 휘말리면서 대역죄인의 집안으로 전락하였다. 심사정은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이러한 집안 내력으로 평생을 불우하게 살다 간 화가다. <촉잔도권>은 그가 죽기 1년 전에 그린 산수화다. 자신이 평생에 걸쳐 이룩한 화법과 기량을 쏟아부었다는 평가다. 촉으로 가는 험난한 여정을 대규모 화폭에 담았는데, 결코 녹녹치 않았던 자신의 삶을 이 그림에 투영한 것이 아닐까. 두 그림이 산수를 그린 대작이라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각 화가의 대비되는 삶 때문인지 느낌은 사뭇 다르다. 사실 정선, 김홍도, 신윤복, 이인문, 모두 대단하지만 18세기 조선의 회화사에서 심사정을 빼놓을 수는 없다. 그에 대한 진지한 연구와 재평가가 이루어져서 비록 사후에나마 제대로 된 자기 자리를 찾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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