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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 문화재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 국립현대미술관 특별기획전 <지상의 미술관>

by *Blue Note*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이번 전시는 총 4개의 세션으로 나뉘어 각 세션마다 독립된 전시공간에서 진행되었다. 국립현대 미수관의 특별기획전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의 두 번째 주제인 <지상(紙上)의 미술관>은 제2 전시실에서 펼쳐졌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우리나라 근대의 인쇄 미술에 대한 소개,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다. 시기는 1920-1940년대가 중심이다. 민간 신문사들을 중심으로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신문소설의 문인들, 그리고 삽화가들이 망라되었다. 신문의 자매지로 시작된 잡지의 등장도 우리 근현대 문화사의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이다. 이번 전시는 당시에 발행되었던 잡지의 표지 그림, 도안, 글씨를 꾸미는 장정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비중있게 다루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는 생각이다.

제2 전시실 / 무슨 독서실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사실 조금만 더 이 공간에 있어보면 이 전시실이 얼마나 멋진 공간인지 알게 된다. 

 

책상 위에 펼쳐진 책들은 신문에 연재되었던 신문소설과 삽화를 복사한 것들이다. 

 

심훈 작, 이상범 화, 상록수, 동아일보 1963.11.7 / 이 삽화를 그린 청전 이상범은 동아일보 학예부 미술기자로 근무하며 수많은 주요 장편소설의 삽화를 그렸다. 그의 삽화는 동양화의 대가다운 필법으로 인물, 풍경, 정물 등을 대담하게 그려냈다는 평가다. 

 

전시실 뒷쪽은 잡지의 영역이다. 진귀한 잡지들이 유리장안에 전시되어 있다. 사진은 김소월 진달래꽃에 대한 설명

 

김소월 <진달래꽃>, 1925 매문사 발행, 화자미상, 근대서지연구소 소장 / 현재 약 10개 정도가 남아 있다고 한다. 그림을 그린 화가가 누구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정지용 <지용시선>, 1946, 김용준 장정, 을유문화사, 근대서지연구소 소장 / 표지 전면에 난초를 쳐 한 폭의 문인화를 방불케 한다. 

 

정지용 <백록담>, 1941 길진섭 장정, 문장사 발행, 근대서지연구소 소장 / 정지용의 두 번째 시집이다. 

 

이광수 <무정>, 1938 (제8판), 정현웅 장정, 박문서관 출판, 화봉문고 소장 / 한국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인 <무정>의 단행본이다.

 

백석 <사슴>, 1936 화봉문고 소장 / 자비로 출판한 백석의 유일한 시집이다. 100부만 한정 출판하였다고 한다. 얼핏 무장정의 장정을 한 느낌을 주는 표지는 겹장의 한지로 마련하여 매우 고급스럽다. 현재 10여 개 정도가 남아있는데 수집가들이 가장 소장하고 싶어하는 시집이라고 한다. 

 

이태준 <무서록>, 김용준 장정, 1941년 박문서관, 근대서지연구소 소장 / 두서없이 써 내려간 책이라는 소박한 제목과는 달리 가장 뛰어난 수필집으로 평가받는 이태준의 무서록... '책은 한껏 아름다워라. 그대는 인공으로 된 모든 문화물 가운데 꽃이요, 천사요, 영웅이기 때문이다'라는 구절이 있는 '책'이라는 수필도 이 책에 있다. 성북동 지기인 김용준이 표지에 기품 있는 수선화를 그렸다.

 

이태준 <상허문학독본>, 배정국 장정, 1946 백양당 출판, 근대서지연구소 소장 / 이태준, 배정국, 그리고 김용준은 모두 성북동에 살면서 서로 어울렸다. 표지에는 동양적이고 단아한 분위기가 풍긴다. 

 

유치환 <청마시초>, 구본웅 장정, 1939 청색지사 발행, 근대서지연구소 소장 / 청마시초는 유치환의 첫 시집으로 구본웅이 운영한 청색지사에서 발행했고 장정도 구본웅이 했을 것이라 추정만 해왔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말 그림이 그려진 재킷이 발견되어 구본웅 장정의 진면목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임화 <현해탄>, 구본웅 장정, 1938 동광당 서점 출판, 근대서지연구소 소장 / 사회주의 문화운동의 대표 격인 임화의 첫 시집이다. 그는 1953년 평양에서 숙청되어 총살당한다. 죄명은 미제의 간첩.

 

마해송 <해송동화집>, 이병현 삽화, 1934 동성사 출판, 근대서지연구소 소장 / 해송동화집은 최초의 개인 창작 동화집이다. 일본 도쿄의 출판사인 동성사에서 발행했다. 

 

서정주, 화사집, 정지용 제자, 김용준 면화, 1941, 남만서고, 화봉문고 소장 / 서정주의 첫 시집이다. 100부 한정판인데 이 책은 발행자 기증본 10권 중 3번째 책이다. 전통의 능화판 표지에 정지용 시인이 '궁발거사 화사집'이라고 제자(題字)를 썼다. 

 

서정주, 귀촉도, 김영주 장정, 1948 선문사 출판, 근대서지연구소 소장 / 서정주의 두 번째 시집이다. 장정을 맡은 화가 김영주는 소담스런 꽃그림으로 표지를 꾸몄다. 

 

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이정 장정, 1948, 정음사 출판, 근대서지연구소 소장 / 윤동주의 유고시집이다. 갈포 벽지로 보이는 특이한 재질의 하드커버, 목판 표지화는 강렬한 느낌을 준다. 판화가 이정이 장정을 맡았다.

 

제2 전시실 <지상의 미술관>

 

신문 소설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다면 그는 분명 연식이 좀 된 사람들이다. 이제는 신문이라는 매체 자체가 유튜브, 포털, 방송 등에 밀려 존재감이 많이 없어졌으니, 예전에 신문에 연재되던 신문소설은 그야말로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 버린 셈이다. 그 오래된 기억을 소환해서 관람객에게 꺼내 보인 미술관의 기획력과 의도가 고맙다. 내가 좋아하는 화가 중 하나인 천정 이상범이 동아일보에 근무했었고,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 말소 사건에도 관여했으며, 또 신문소설의 삽화가로도 활동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잡지의 내용을 채운 문인들의 능력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한 권의 시집을 세상에 내놓기까지는 표지 그림을 그리고 도안을 디자인하는 장정가의 역할도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도 이번 전시를 통해 새삼 느끼게 되었다. 무엇보다 이번 전시의 제 2전시실에서 선보인 <지상의 미술관>의 전시기법 자체가 너무가 인상적이다. 전시공간의 앞부분은 수십 개의 스탠드 조명들이 책상 위의 신문소설들을 비추고 있다. 그 뒷쪽으로 고색창연한 잡지들을 한 권씩 따로 진열한 유리 기둥을 닮은 진열장들이 수십 개 들어서 있다. 전시실 전체가 무슨 설치미술 같다. 아주 인상적이다. 유물 하나하나도 참 귀하고 소중하지만, 이런 전시를 보여준 기획력도 많이 칭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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