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트렉의 작품> 시카고 미술관 (Art Institute of Chicago)

시카고 여행에서 가장 중점을 두고 기대했던 것은 Art Institute of Chicago (시카고 미술관) 방문이었다. 그리고 그 유서 깊은 미술관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작품은 로트렉의 At the Moulin Rouge (물랑루즈에서)였다. 로트렉의 정식 이름은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Henri de Toulouse Lautrec) 이다. 통상 유럽인의 경우, 이름이 길수록 귀족 출신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로트렉 역시 대단한 가문 출신이다. 그는 프랑스에서 1864년 태어나 19세기 후반 활동한 화가지만 당시 예술 사조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구현해 냈다. 하지만 사람들은 화가, 예술가로서의 로트렉보다는 그의 가문과 대비되는 왜소한 체구 (실제로 그는 뼈가 자라지 않고 잘 부서지는 난치병을 앓았다), 몽마르뜨 지역 사창가 여성과의 관계 같은 가십성 일화로만 그를 기억한다. 이러한 부당한 평가는 현재까지도 이어져서 사람들은 '로트렉'하면 '꼽추 화가'라는 프레임에 그를 가두어버린다. 이러한 족쇄는 언제 풀릴 것인가. 과연 그게 가능하기는 할지 로트렉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 답답할 뿐이다 (아니 사실은 많이 화가 난다). 오늘 시카고 미술관이 소장한 그의 작품들을 소개하는 일이 화가 로트렉의 참모습을 이해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로트렉 (Lautrec)

Equestrienne, 1887-88

(At the Cirque Fernando, 페르난도 서커스에서)

서커스 마상 묘기의 긴장감이 느껴진다.

Moulin de la Galette, 1889

물랑 드 라 갈레트(Moulin de la Galette)

댄스홀을 그린 이 그림은

당시 몽마르뜨 지역의 밤문화를 표현했다.

로트렉의 작품이 있는 전시실

노신사가 열심히 작품 설명을 하고 있다.

At the Moulin Rouge

(물랑루즈에서) 1892-95

직접 보기를 가장 고대하던 그림이다.

몽마르트의 유명한 카바레 클럽

물랑루주를 그린 강렬한 작품이다.

Portrait of Jeanne Wenz, 1886

로트렉이 22세 때 그린 작품이다.

좌로부터 Portrait of Jeanne Wenz,

At the Moulin Rouge, Moulin de la Galette

Ballet Dancers (발레 댄서), 1885-86

빠른 붓놀림으로 매우 역동적이다.

드가의 작품과 비교해 봐도 흥미롭다.

같은 소재, 완전히 다른 분위기...

로트렉의 작품들

우리가 한 사람의 예술가를 이해할 때 그의 인생 여정을 아예 무시할 수는 없다. 작품 곳곳에 삶의 경험과 역정이 배어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작품을 더 깊게 이해하는 보조 수단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솔직히 이야기하면, 나는 작품을 볼 때 작가가 누구인지 알 필요 없이 우선 먼저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화가의 이름, 시대, 유파, 미술사적 의의, 에피소드 같은 것은 나중에 알게 되면 알고, 몰라도 될 것이다. 작품이 주는 감동은 그런 것에서 오는 게 아니니까. 로트렉은 고귀한 신분으로 태어났기에 더욱 힘들고 비참한 삶을 살았다. 하지만 그런 그의 개인사를 몰라도 그의 작품은 여전히 위대하고 아름답다. 적지 않은 경우에 이런 잡스런 지식의 편린들이 작품이 주는 진정한 감동을 방해하는 요소가 된다. 로트렉의 <물랑루주에서>가 관람객 눈길을 사로잡는 이유는 시시콜콜한 에피소드나 배경에 등장하는 실제 인물이 누구냐 때문이 아니라 그림 오른쪽 끝에 대담하게 그려 넣은 여성의 얼굴 때문이다. 뒤로 젖혀진 그녀의 얼굴은 조명을 받아 푸른색이다. 녹색에 가까운 눈으로 관람객을 도도하고 강렬하게 쏘아본다. 그녀가 당시 무랑루즈에서 잘 나가던 가수 May Milton이라는 사실이 작품을 감상하는데 하등의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냥 허구의 인물이라 해도 뭐가 문제인가. 로트렉은 캔버스에 그리는 기존의 방식을 뛰어넘어 '포스터'라는 영역을 개척한 선구자이기도 하다. 물랑루즈를 선전하기 위해 제작한 그의 포스터들은 상업적이면서도 아름답다. 이러한 사실이 '꼽추 화가, 로트렉'보다 훨씬 덜 알려져 있으니... 제발 작품에 얽힌 에피소드, 뒷이야기, 이런 거 너무 좋아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