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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생각들

그 섬에 가고싶다.

by *Blue Note*

 

I

 

그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다. 일년에 며칠 정도, 특히 가을날 괜히 심란해지는 증상은 언제부턴가 감쪽같이 없어졌다. 대신 가끔 무기력해진다. 어릴 적 친구들을 만나 회포를 풀면서 일상에 대한 일탈을 꿈꾸기도 하지만 다음날 아침 어김없이 거울 앞에서 넥타이를 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일년에 한번씩 건강 진단을 받을 때 그는 조금 긴장한다. 아내와 아이들이 정말로 바라지만 아직 금연에 성공하지 못했다. 아빠를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아직은 어리기만 한 아이들이 어느 날 갑자기 말수가 적어지고 마음의 벽을 쌓을까봐 그는 불안하다.

대체로 행복한 편에 속한다고 그는 생각한다.

몇 해전 그는 마흔을 넘겼고, 이제는 날아가는 세월에 속절없이 떠밀리고 있다. 

 


II

 

몇달 전 저희 가족이 오랜 친구부부와 함께 교외에서 주말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준비해 간 고기로 바베큐를 하기 위해 번개탄에 불을 붙이자 불길이 그릴위로 치솟습니다. 신이 난 큰 녀석이 빨리 고기를 굽자고 덤빕니다. “번개탄에 불이 붙어 활활 타오를 때는 고기를 구우면 안돼... 겉에만 꺼멓게 타버리고 속은 잘 익지도 않거든…” 아이에게 고기 굽는 법을 일러주다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듭니다. “번개탄의 불은 사람으로 치면 스무살이야. 이십대는 거칠것 없이 활기차 보이지만 모든 일에 순간적이고 우왕좌왕이지고개를 돌려 옆에 있는 친구에게 슬쩍 한마디,“꼭 미친 놈 같지... 옛날 너랑 나처럼…” 둘이서 의미있는 미소다시 강의가 계속됩니다. “이렇게 숯에 불이 옮겨 붙어 불길과 연기가 없어지고 숯의 색깔이 빨갛게 될 때라야 고기를 제대로 구울 수 있어. 사람으로 치면 아빠나 아저씨 나이야…”짐짓 진지하게 아이의 눈을 들여다보며 물어봅니다.“아빠가 하는 얘기가 무슨 얘기인지 알겠어?” 녀석도 심각하게 고개를 끄덕입니다. 친구가 껄껄 웃습니다.

아들아, 알기는 네가 뭘 알겠니..? 하지만 세월이 흘러 네가 아빠 나이가 되서 오늘 아빠가 한말을 기억하게 된다면 그때는 알게 될꺼야. 다만 한가지, 반드시 그전에 번개탄 같은 이십대를 거쳐야 한단다...  

 


III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정현종 시인의 섬이라는 시입니다. 처음 이 시를 접한 지 이십 년도 더 된 듯 하네요... 단 두 행으로 이루어진 시는 그러나 난해합니다. 여러 가지의 해석이 가능하지만 어느 것도 완벽한 해석은 아닌 듯 싶습니다. 하기야 시를 분석한다거나 시인이 무슨 뜻으로 이런 시를 썼는지를 고민하는 것은 근사한 요리를 있는 그대로 즐기지 못하고 몇 그램의 육류와 야채, 양념으로 구성되었는지를 따지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지요암호 같은 두 행의 시그러나 저는 이 시가 참으로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우리의 삶도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난해함으로 가득차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바로 그 점 때문에) 삶은 아름답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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