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꼭 가봐야할 곳> 조선의 왕궁 : 경복궁 흥례문과 근정전
고궁, 왕궁중 어떤 이름이 맘에 드는지는 각자 다를 것이다. 오래된 궁 vs 왕이 살던 궁... 개인적으로는 왕이 살던 궁, 왕궁이 더 와닿는 매력적인 이름이다. 조선의 왕과 왕비들은 왕궁에서 일생을 보냈다. 역사 이면에 숨어있는 그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그들도 우리처럼 일상을 보내고 오욕과 칠정을 벗어나지 못했으리라. 하지만 그 공간은 일반 백성이 사는 여염집과는 다른 왕궁이었으니 그런 사소한 일상조차도 역사가 되는 것... 서울에 조선시대 왕궁이 5개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그 중에서도 경복궁은 조선의 정궁이기에 의미가 각별하다.
경복궁의 주산인 북악산
풍수를 잘 모르지만
언제 봐도 늠름하고 당당하다.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
입구를 통과하여 뒷모습을 찍어보았다.
광화문을 통과하면 나오는 문이 흥례문이다.
흥레문을 통과하면
경복궁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안내도가 있다.
흥례문의 뒷모습
근정문을 등지고 찍은 사진이다.
근정문
근정전으로 가는 마지막 문이다
조선 궁궐의 정전문 중에서 유일하게
복층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근정전에서 본 근정문의 뒷모습
자, 드디어 경복궁의 정전인 근정전이다.
근정전앞 품계석
근정전은 왕실의 공식 행사나 즉위식, 연회등이 치러지던 곳이다.
근정전 내부
일월오봉도와 옥좌가 보인다.
외국 관광객도 많고
젊은이들도 많아 좀 시끌벅적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흐믓했다.
봄날의 근정전 계단
한복이 눈부시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흥례문이었다. 흥례문은 경복궁의 두번째 문으로 일제에 의해 헐렸다가 다시 중건되었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흥례문 자리에 세웠던 것이 바로 조선 총독부 건물이었다. 조선 식민지배와 한반도 수탈의 상징이었던 조선 총독부 건물은 김영삼 문민정부 시절인 1995년 그야말로 '학실하게...!' 폭파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된다. 우리에겐 치욕의 상징이었던 총독부 건물이지만, 이걸 과연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폭파시켜야만 했는지, 자리를 옮겨 다른 곳에 이전해서 역사의 교훈으로 보전하는 방법은 없었는지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어쨌든 흥례문이 원래의 자리에 당당한 모습으로 서게 된 것은 역사 바로세우기의 차원에서도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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