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 춘천박물관> 오백나한의 미소 : 당신의 마음을 닮은 얼굴
이번 국립춘천박물관 방문은 나의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애초에 직접 보고자 했던 한송사지 석조보살 좌상은 과연 마주하고 보니 하얀 대리석에 새긴 문수보살의 온화한 미소가 은은히 퍼져나오는 듯하였다. 야외 전시장인 현묘의 정원에 있는 태실 석함과 약절구도 좋았고, 특히 토기 전시실 한켠에 놓여있던 배모양 토기는 정말 '의외의 득템'이어서 따로 포스팅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오늘 소개하는 특별기획전인 '영월 창령사터 오백나한전'을 빼놓을 수 없다. 사실 전시내용을 대충은 알고 갔었지만, 이렇게 감동적일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다. 나한 (아라한, 阿羅漢, Arhat)은 수행을 통해 윤회의 굴레를 벗어난 불교의 성자를 총칭하는 단어다. 흔히 부처의 제자로 일컬어지는데, 신성을 가진 부처나 보살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 불상이 32상 80종호라는 엄격한 규범에 따라 표현되는데 비해, 나한은 그 표현방식에 규제가 없어 자유롭다. 그래서 십대제자, 16나한, 그리고 500 나한들은 무제한의 개성으로 모두 다른 모습이다. 바로 우리 인간들처럼 말이다. 이번 특별전은 나한이라는 동일 주제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쟝르의 벽을 뛰어넘어 마련되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지금은 사라져버린 폐사지에서 출토되어 수백년만에 우리앞에 모습을 드러낸 친근하고 질박한 모습의 돌로 만든 나한들이 있다.
물징검다리
김승연, 2006년
전시장 일부까지 이 길이 이어진다.
나한의 세계로 들어가는 듯 하다.
창년사지 오백나한전
전시실을 들어서기 전
벌써부터 살짝 설레인다
각각의 나한상들이
커다란 하나의 전체를 만드는 모습이다.
꽤 감동적이다.
가사밖으로 손을 내민 나한
보주를 든 나한 Arhat
미소띤 나한
각기 다른 모습과 표정은
모두 정겨움으로 통한다
손을 모은 나한
바위뒤에 앉은 나한
각각의 나한상도 멋지지만
전시장을 하나의 설치미술처럼 탈바꿈시킨
기획력과 내공이 대단하다.
김승영, Mind, 2006년
전시실 공간 중간쯤에 설치된 작품이다.
검은색 안료를 푼 물이
소용돌이 치고 있다.
조용해 보여도 속으로 소용돌이치는
사람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수행하는 나한
생각에 잠긴 나한
희노애락의 주제에 맞추어
한쪽 벽면에
나한들을 모아서 전시한 점도 재미있다.
일부 나한상의 입술에는
붉게 채색한 흔적이 있다.
X-선 형광분석과 X-선 회절검사 결과
납을 주성분으로 하는
연단 (red lead)으로 밝혀졌다.
돌위에 새겨진 염원
이형재, 2017년
불음
부처의 음성이라는 의미
최영식, 2018년
강원의 미소
홍석창
창령사터에서 발굴된 나한들을 모아 전시한 특별전시지만 그렇게만 이름 붙히기에는 부족한, 나한이라는 공통 주제를 매개로 과거와 현재를 함께 아우르는 세련된 전시였다. 입구에 설치된 물징검다리에서부터 이미 전시는 시작되는 것이었다. 수많은 나한상들 사이를 걷다보면 어느덧 고단한 현실을 잊은 듯 하다가도, 너무나도 인간적인 웃음과 소박한 모습에, 부처에게서는 느끼지 못했던 정겨움을 즐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하였다. 꼼꼼히 둘러보고 전시실을 나설때 푸근함과 뿌듯함을 느꼈다. 멋진 기획으로 훌륭하게 전시를 열어준 국립 춘천박물관측에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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