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행> 부암동 석파정
석파정은 원래 당시 세도가였던 안동 김씨 김흥근의 별서였다. 철종때 영의정까지 지냈던 그의 집은 ‘삼계동정사’로 불렸는데 장안의 이름난 명원(名園)이었다. 이후 대원군이 정권을 잡으면서 이 집은 석파 이하응의 별서로 바뀌고 이름도 그의 호를 따서 석파정으로 불리게 된다. 부암동 산자락에 있는 석파정은 현재는 자하문터널을 지나는 도로변에 있다. 서울미술관 통합권을 끊으면 미술관 관람과 함께 석파정을 둘러볼 수 있다. 인왕산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정원과 바위, 멋진 정자와 한옥들로 꾸며진 당시 권력자의 별서를 따라가보기로 하자.
서울미술관 본관 관람을 마치고 나오면 정면으로 미술관 신관(M2)과 석물들, 삼층석탑과 소수운렴암이 보인다. 석파정의 첫 모습이다.
소수운렴암(巢水雲簾庵) 삼계동 계곡에 지금은 물이 많지 않아 아쉬웠다.
대원군 별서 이하응의 초상이 걸려있다. 통상 사랑채라고 하지만 오리지널 사랑채는 현재 석파랑이라고 하는 음식점자리로 옮겨져 있다.
계단을 조금 오르면 별채로 가는 길이다. 별채를 드나드는 협문이 소박하면서도 참으로 아름답다. 별채 담장 밖과 안에서 찍은 모습
고종 황제가 묵었던 별채의 방
별채에서 내려다본 모습 별채 건물은 이 위치에서는 카메라에 담기 어려웠다. 결국 건너편 삼층 석탑이 있는 위치로 가야 건물 전체를 촬영할 수 있다.
별서 건물을 보고 돌아나와 작은 언덕길을 따라 걸으면 특이한 정자가 하나 나온다. 바로 석파정이다. '유수성중관풍루'라는 별칭이 있다.
석파정 앙징맞은 이 누정은 지붕에 기와 대신 동판으로 청나라풍의 문살문양을 입혔다. 바닥 마감을 전통적인 나무대신 화강암으로 한 점도 특이하다.
언덕길이 끝나는 곳에 있는 너럭바위 위엄이 서린 당당한 모습이다.
너럭 바위를 보고 내려오면서 산책로에서 바라본 사랑채와 별채의 모습 본래 7개의 건물이 있었는데 현재는 사랑채, 안채, 별채 그리고 석파정만 남아있는 상태다.
삼층석탑, 9세기 이중 기단에 삼층 탑신을 한 전형적인 통일신라 석탑이다. 경주 개인 경작지에서 수습해서 2012년 현재의 위치로 이전했다고 한다. 바로 아래로 소수운렴암이 있다.
석파정 약도 석파정의 소수운렴암(巢水雲簾庵)이라는 바위글씨 (각자)가 매우 인상적이다. 뜻 해설을 보니 '구름 발 드리운 물 위의 암자', 혹은 '물을 품고 구름이 발을 친 집'이라는 멋진 이름이었다. 노론의 영수 송시열의 수제자인 권상하의 글씨라고 전하는 것으로 보아 석파정이 생기기 전부터 이 곳에 별서나 암자가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석파정의 다른 이름인 유수성중관풍루 (流水聲中觀楓樓)도 운치있는 작명이다. '흐르는 물소리 속에서 단풍을 보는 누각'이라는 뜻이다. 옛 사람들의 풍류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름처럼 단풍이 물든 가을녁에 이 곳을 다시 찾는다면 그 참맛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이 날 석파정에서 보낸 시간들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충분히 즐겁고 가치있었다. 아름다운 자연, 멋진 건축물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그 중 한가지만 꼽으라면 나는 별채로 들어가는 협문을 선택하겠다. 정다운 콩떡담, 소박하고 아담한 협문, 그리고 나무 그늘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너무나 평화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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