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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공연 문화재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 국립현대미술관 특별전 <이인행각>

by *Blue 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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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현대미술관 특별전 <이인 행각>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특별전의 제3 전시실에 붙은 제목은 <이인행각 (二人行脚)>이다. 1930-50년대를 풍미했던 문인들과 화가의 개별적인 인연을 테마로 전시를 꾸몄다. 시인 백석과 당대 최고의 장정가였던 정현웅의 만남을 비롯해 소설가 이태준과 화가 김용준 등 당시 예술가들의 교우를 엿볼 수 있다. 이와 함께 이들 다음 세대에 해당하는 화가들의 작품이 이어지는데, 이들은 화가이면서도 문학적 재능 또한 뛰어났던 인물들이었다.

소녀상, 정현웅, 1928 / 정현웅은 당대 최고의 장정가이자 삽화가 이기도 했다.

 

백석 글, 정현웅 그림,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여성 제3권 제3호, 조선일보사, 1938.3 아단문고 제공 / 백석과 정현웅의 인연은 조선일보 출판부에서 시작된다. 이들은 조선일보에서 발행하는 잡지 <여성>의 편집자로 함께 일했다.  

 

정현웅이 그린 백석의 옆얼굴과 그에 대해 쓴 글이다. 제목은 <미스터 백석>으로 1939년 문장지에 발표되었다. 좀 길지만 전문을 옮겨본다. <이것은 청년 시인이고 잡지 여성 편집자 미스터 백석의 프로필이다. 미스터 백석은 바로 내 오른쪽 옆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사진을 오리기도 하고 와리쓰게(레이아웃)도 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밤낮 미스터 백석의 심각한 프로필만 보게 된다. 미스터 백석의 프로필은 조상과 같이 아름답다. 미스터 백석은 서반아(스페인) 사람도 같고 필립핀(필리핀) 사람도 같다. 미스터 백석에게 서반아 투우사의 옷을 입히면 꼭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하략>.

 

 

백석 초상, 정현웅, 1957 

 

이태준이 사용하던 책장, 19C, 유족 소장 / 소설가 이태준은 특히 우리 문화재에 대한 사랑과 조예가 깊었다. 미려한 문장가인 이태준은 화가였던 김용준과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  

 

김용준, 묵매도, 1947, 개인 소장 / 이태준의 작품집 대부분은 친구 김용준이 장정을 맡았다.

 

이번 전시에서 특히 눈길을 끈 작가가 있었다. 위 두 작품을 그린 최 재덕이다. 

 

<금붕어> 최재덕, 1940년대, 개인 소장 / 최재덕은 시인 김광균이 이중섭과 함께 가장 아꼈던 화가 중 하나였다고 한다. 최재덕은 김광균의 시집의 장정을 맡기도 했다. 

 

<한강의 포플라 나무> 최재덕, 1940년대, 개인 소장 / 아름다운 그림에 정신을 빼앗겨 한참을 서있었다. 시인 김광균이 한때 소장하기도 했다고 한다.

 

<닭과 게> 이중섭, 1954, 이중섭미술관 소장 / 초정 김상옥 출판기념회 방명록에 그린 그림이다. 

 

이중섭 그림, 김용호 글, 1950년대, 개인 소장, <너를 숨 쉬고> / 날이 날마다 / 오가는 길에 / 너만 있어 / 숱한 사람들이 / 오가는 길에 / 너만이 있어 / 어항 속 / 한 마리, 운명의 / 금붕어처럼 / 너를 숨 쉬고 / 나는 살아간다

 

이쾌대, 족두리 쓴 여인, 1940년대, 목판, 개인 소장 / 정치가이자 화가인 이여성이 이쾌대의 친형이다.

 

이쾌대, 소녀상, 1940년대, 개인 소장

 

김환기, 달밤, 1951, 개인 소장 / 시인 김광균이 소장했던 작품이다. 여러 문예인들을 후원했던 김광균의 부산 사무실 뒷벽에 걸려 있었다고 한다. 

 

김환기, 창공을 날으는 새, 1958, 개인 소장 / 수화 김환기는 문학을 매우 사랑했을 뿐만 아니라 문학적 재능도 상당했다. 서정주, 김광균, 조병화, 김광섭 등 많은 문인들과 교류하였다. 

 

김환기, 가을, 1955, 개인 소장 / 참, 아름다운 그림이다. 조병화가 김환기의 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이젤에 걸려있던 아직 마르지 않은 그림을 들고 나왔는데 그게 이 <가을>이라는 작품이다. 싸인을 해달라는 말에 김환기는 '싸인은 무슨 싸인, 그림을 보면 내 것이지'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김환기, 매화와 달과 백자, 1958 

 

김환기, 항아리와 매화가지, 1958, 개인 / 김환기는 시적 감수성뿐 아니라 문화재에 대한 안목도 출중했다. 실제로 그는 백자를 사랑했고 많이 수집했으며, 그림의 주요 모티브로 삼았다. 

 

 

<여성> 잡지에 실린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 정현웅이 그린 그림은 세월이 흘렀어도 바래지 않는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두 사람의 합작품을 보고 있으니 서로를 이해하고 아꼈던 둘의 우정이 느껴지는 듯하였다. 편집실 옆자리에 앉아서 작업에 몰두하는 백석의 조각 같은 옆얼굴을 그린 정현웅에게 백석은 시 <북방에서>를 헌정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나중에 월북한 후에도 교류를 이어 간 것으로 보인다. 이태준과 김용준, 김광균과 최재덕, 이중섭, 그리고 김환기와 조병화... 이렇게 서로 연결되고 이어진 교류와 우정의 궤적을 따라가며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안내해준 <이인 행각>의 기획의도는 참신하고 성공적이었다. 특히 이 전시실에서 내 마음을 빼앗아 간 것은 최재덕의 <한강의 포플라 나무>다. 물론 김환기나 이중섭등은 지명도나 한국 근대미술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최재덕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대단한 존재이고, 그들의 그림이 예술적으로 얼마나 뛰어난지는 굳이 들먹일 필요도 없다. 하지만 내게 최재덕은 처음으로 알게된 화가이고 그 만남이 너무 신선한 충격이었기에 이번에는 그에게 한 표를 주고 싶었던 거다. <한강의 포플라 나무>는 전면에 가득 포플라 나무를 가득 배치하고 대부분의 배경을 한강으로 채웠다. 하늘은 아주 일부분만 보인다. 가벼운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미묘한 색채의 변화는 오후의 햇살을 받아 변화하는 빛의 변주를 보여준다.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봤던 것은 그림 왼쪽 아래에 그려 넣은 놀이배들이다. 이 배들로 인해 그림의 입체감이 살아난다고 나는 생각한다. 공간이 급작스럽게 확 열리면서 확장되는 것이다. 그 감동과 시원함이 대단하다. 1940년대 가장 촉망받는 화가였지만 월북하여 그가 남긴 작품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게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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