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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 문화재

<국립중앙박물관> 분청사기 백자실 교체 전시

by *Blue Note*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분청사기와 상감백자

 

박물관을 다니는 재미 중의 하나가, 전시실의 몇 곳이 어느 날 새로운 유물로 대체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 느끼는 작은 호기심과 설레임이라고 할 수 있다. 박물관측에서 마음먹고 준비한 대규모 특별 기획전을 관람하는 것도 의미 있지만, 못보던 유물이 수줍게 단장하고 신참처럼 전시실 한켠에 자리 잡은 모습은 늘 새로운 경험이다. 국립중앙 박물관의 도자기 전시실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다. 얼마 전 이곳을 방문했을 때, 마침 분청사기와 백자를 교체 전시하고 있었다. 유물 한두 점 바꾸는 것 보다는 규모가 큰, 일종의 중폭 정도의 유물 교체라고 할 수 있다. 반가운 마음에 오래 둘러보았다. 분청의 아름다움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귀한 상감 백자도 몇 점 구경할 수 있어서 눈호강 많이 한 방문이었다. 

분청사기 인화무늬 접시

조선 15C 전반

접시 안쪽과 바깥을 

모두 인화문으로 처리하였다.

분청의 인화문은 가히 현대적이다.

 

분청사기 상감 인화무늬 대접

줄기는 상감으로

꽃과 잎은 도장 무늬로 표현하였다.

조선 15C 전반

 

「내섬시」가 새겨진 분청사기 인화무늬 대접

내섬시는 조선초 2품이상의 관리나

여진, 일본의 사신에게 식사와 술을 제공한

관청으로 호조 소속이었다고 한다.

조선 15세기

 

 

「예빈시」가 새겨진

분청사기 인화무늬 대접

조선 15세기

예빈시는 외국사절 음식접대를 담당하던

예조 소속의 관청이라고 한다.

 

「양산], 「장흥고]가 새겨진

분청사기 인화무늬 대접

경남 양산, 장흥고는

생산지를 표시한 것이다. 

조선 15세기

 

「장흥고], 「밀양]이 새겨진

분청사기 인화무늬 대접

조선 15C, 경남

 

「인수부], 「울산]이 새겨진

분청사기 인화무늬 대접

조선 15세기

 

「장흥고]가 새겨진

분청사기 인화무늬 대접

경상북도 성주에 있는

세조의 태실에서 출토되었다.

조선 1438년 이전

 

분청사기 백자전시실 모습

 

백자 상감 모란 나비무늬 편병

조선 15C 

분청의 조화기법처럼 보이지만

흑상감 무늬에 

백자 태토를 사용한 연질 백자다.

 

백자 상감 나무 연꽃무늬 병

조선 15C 

상감기법의 경질 백자다.

나무 무늬의 윤곽선 안쪽으로

불규칙하게 배열된 점무늬가 이채롭다.

 

도자기에 시를 써넣거나 좋은 글귀를 넣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관청 이름이나 생산지를 새겨넣는 경우는 흔치 않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분청사기에서는 비교적 흔한데 도난방지와 품질 관리의 필요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세종실록에 기록된 내용은 일부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진상하는 그릇은 대개 튼튼하게 제조하지 않아 오래가지 않아서 파손되니 지금부터는 그릇 밑바닥에 만든 장인의 이름을 써 넣어서 후일의 참고로 삼고, 마음을 써서 만들지 않은 자에게는 그 그릇을 물어 넣게 하소서>. 글쎄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왕비에 은팔찌 안쪽에는 이를 만든 장인 <다리>의 이름을 새겨 존경심을 표시했는데, 천년이 지난 조선에서는 도공에게 예우는 커녕 천민으로 업신여기면서 품질에 대한 책임까지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이 망한 이유가 수십 가지가 있겠지만, 전문가나 기술자를 귀히 여기지 않은 고루한 유교 이념도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천대 받으면서도 아름다운 도자기를 빚어 후세에 전한 이름 없는 조선의 도공들에게 죄송한 마음과 존경심을 담아 감사하고 기리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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