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의 사찰> 남선사
이번 포스팅이 두 차례에 걸쳐 다녀온 교토 여행에 관한 마지막 내용이다. 오늘 마지막으로 소개하는 일본의 사찰은 남선사 (난젠지)다. 마지막 교토 방문이 벌써 2년이 다 되어가지만 중간중간에 국내 사찰, 전시회, 또 맛집 등 여러 가지 잡다한 다른 내용들을 올리다 보니 연재를 마치기까지 많이 늦어졌다. 나름대로 사진과 내용을 검증하고, 혹 잘못 이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지 검수도 했지만 미진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아마추어인 나로서는 내 능력 안에서 보고 느낀 것을 잘 담아내려고 애썼다. 개인적으로 큰 공부가 되었고, 스스로를 칭찬해주고 싶다. 언젠가 또 교토를 방문할 것이다. 그 날이 빨리 오기를 소망해본다. 일본은 수천년 동안,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우리의 이웃이고, 극복의 대상이기도 하고, 잊지 못할 가해자이자 전략적 동반자이기도 하다. 토착 왜구와 친일로 국민을 갈라치기 하는 한낱 정치세력들의 구호로는 이 엄중하고 도도한, 그러면서도 무심한 역사의 물줄기를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남선사
멀리 남선사를 대표하는
삼문이 보이기 시작한다.
종각
남선사의 삼문은
일본 3대 삼문중 하나다.
웅장하면서도
섬세한 아름다움이 압권이다.
법당
이제 발길을 돌려
사진 뒷쪽에 보이는 수로각을 보러 간다.
수로각
가장 인기있는 포토존이다.
근처 호수에서 물을 끌어오기 위해
메이지 시대에 만들었다고 한다.
700년 넘는 남선사에
난데없는 수로각이 쌩뚱맞다.
그래도 이게 이제는
남선사의 대표 이미지가 되었다.
수로각 위쪽까지 올라가 봤다.
여전히 물이 흐르고 있었다.
수로각 옆에 있는
이름 모를 전각
아마도 남선사의 탑두사원인듯 하다.
방장 입구와 내부
남선사 방장 정원중 가장 잘 알려져 있는
대방장 정원이다.
고보리 엔슈의 작품이다.
여심정
소방장 정원이다.
육도정
윤회를 시각화한 정원이라고 한다.
용음정
아름다운 남선사의 전각들과 당우, 수로각과는 별개로 우리에겐 아쉬움도 있다. 이 사찰은 고려시대 만들어진 초조 대장경을 소장하고 있다. 이것이 임지왜란이나 일제 강점기에 강제로 반출되었다는 설이 일반적이었으나, 최근에는 고려말 조선초에 정상적인 외교경로를 통해 들여왔을 가능성에 더 무게가 실리고 있다. 대결의 역사도 있지만, 우리와 일본 사이에는 교류와 협력의 역사도 엄연하다. 물론 정확한 경로는 학계에서 추후 연구를 통해 밝혀야 할 사안이다. 일본 사찰에는 특히 정원이 많다는 사실을 이번에도 확인했다. 일본인들이 까빡 죽는 최고의 작정가(作庭家) 고보리 엔슈의 정원을 봤다는 것도 기억에 남을만한 경험이었다. 물론 그 깊은 맛과 의미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자연을 축소해 놓은 관조의 대상인 일본 정원과, 생활공간의 일부인 우리의 마당은 달라도 참 많이 다르다. 그렇기에 일본인과 우리는 비슷한 외모와는 달리, 서로를 이해하기 참 어려운 사이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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