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여행> 경주 양동 민속마을
조선시대 급격한 봉건 제도의 몰락과 뒤이은 일제 강점, 한국 전쟁, 이후 숨 가쁘게 진행된 산업화등으로 이제 우리나라에 옛 모습을 온전히 간직한 전통 주거 공동체는 거의 없어졌다. 사람 살던 마을이 이제는 국가적으로 보호해야 할 대상이 된 것이다. 그 많던 집성촌은 다 사라지고 안동의 하회마을, 오늘 소개하는 경주 양동마을, 그리고 아산의 외암리 민속마을 정도만 남은 듯하다. 그 소용돌이 속에 양동마을이 하회마을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럽고 자랑스러운 일이다. 경주 시내에서 북쪽으로 삼십여분을 달려 마을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상당히 넓다는 것과 그럼에도 아기자기하다는 이중적 인상이 교차했다. 동선에 따라 여러 탐방 코스와 둘레길이 구분되어 있었으나, 마을 구경에까지 어떤 전형을 따를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그저 발길 닿는대로 둘러봤다. 그러다 보니 미처 못 본 곳도 있다. 하지만 아쉬움은 없다. 또 와서 마저 보면 되니까.... 두 시간 남짓 천천히 둘러본 순서대로 사진을 올려본다.
양동마을 안내판
마을 초입에서 바라본 전경
손종로 정충비각
병자호란 때 전사한 손종로와
그의 노비 억부를 기리는 비각이다.
관가정
중종 때 청백리인
손중돈의 살림집이라고 한다.
1514년에 지은 건물이다.
보물 제442호
관가정 주변의 풍경
향단
중종이 이언적에게 지어준 집이라고 한다.
아쉽게도 이날은 개방되어 있지 않아
내부를 볼 수는 없었다.
1543년, 보물 제412호
향단에서 내려다본
양동마을
향단에서 내려와
무첨당과 대성헌을 보러 가는 길
무첨당 대문
무첨당
제사를 지내는 재청의 기능이 강했으며
문중의 사랑채 역할도 했다고 한다.
조선 16C, 보물 제411호
무첨당과 지척 거리에
대성헌이 있다.
대성헌
철종 원년인 1850년에 지었다.
대성헌이라는 당호는
성주봉과 마주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대성헌에서 바라본 풍경
다시 마을 어귀로 내려와
심수정을 둘러봤다.
심수정은 마을 안팎에 있는
10개 정자중 가장 크다.
마을의 서당 역할을 했다고 한다.
차경이 참 아름답다.
날 좋은 봄날에
다시 방문하기를 기약하며...
양동마을은 조선시대를 관통하며 이어온 집성촌이다. 경주 손씨와 여주 이씨 가문에서 배출한 출중한 인물들에 대한 자부심은 유서 깊은 건축유산으로 형상화되어 굳건히 자리 잡았다. 그중 몇은 국가가 지정한 보물이다. 하지만 다른 눈으로 보면 위풍당당한 오래된 솟을대문 외에도 볼거리는 많다. 구불구불한 마을길, 실개천, 흙벽 곳곳에 육백년의 역사가 숨쉬고 있다. 무심한 토담에 볏짚으로 이엉을 얹은 초가집 지붕들은 다정하고 편안하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인 경주 양동마을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오히려 이 마을의 너그럽고 넉넉한 품새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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