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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경기도

<남양주 가볼만한 곳> 덕혜옹주와 의친왕의 묘

by *Blue Note*

<홍유릉> 덕혜옹주묘, 의친왕 묘, 영친왕 묘

 

 

기본적으로 고종과 순종의 능인 홍유릉에는 그러나 다른 왕실 가족들의 묘들도 있다. 고종의 아들인 영친왕, 의친왕, 그리고 고명딸인 덕혜옹주의 묘가 그것이다. 결국 홍유릉은 고종의 직계가족의 가족묘라고 할 수 있으며, 대한제국의 황실능이라고도 할 수 있다. 지금은 행정구역상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으로 불리는 곳에 조성된 대한제국의 황릉은 비록 황제의 위엄을 나타내고자 하였으나 오히려 망국의 아픔을 보여주는 상징이 되고 말았다. 황릉인 홍유릉을 중심으로 그 주변의 영원, 덕혜옹주 묘, 의친왕의 묘가 모셔져 있어서 함께 둘러볼 수 있다. 홍릉과 유릉을 본 후에 남쪽의 작은 문을 통해 홍유릉 담밖으로 나서면 영원, 덕혜옹주의 묘로 이어지는 산책길이 이어진다.

영친왕의 묘로 가는 길

인근 주민들의 산책로이기도 하다.

 

영원의 재실

영원은 영친왕을 모신 묘이다.

 

 

 

 

영원의 홍살문과 정자각

 

 

 

자각을 조금 비껴난 뒷쪽으로

영친왕이 이방자 여사와 함께

잠들어 있는 영원이 살짝 보인다.

 

 

 

홍릉이나 유릉과는 달리

영원은 비교적 가까이 가서 볼 수 있다.

 

 

 

 

 

영원에서 내려다본 정자각의 모습

 

회인원

영친왕의 둘째 아들인

황세손 이구의 무덤이다.

영원 바로 옆에 있다.

아무 석물이나 혼유석도 없이

봉분만 덩그러니 있다.

 

 

 

 

덕혜옹주의 묘

날씨는 좋아서 햇살은 눈부신데...

묘앞에 서니 처연한 마음이 가득하다....

 

덕혜옹주의 묘를 지나

의친왕 묘를 보러 가는 길

 

 

 

의친왕의 묘

고종과 귀인 장씨 사이에서 났다.

의친왕은 배일정신으로

독립운동을 지원했던 황족이다.

 

산책로를 따라

다시 돌아 나오는 길에

출처를 알 수 없는

문인석이 하나 서있다.

 

어린 나이에 일본에 볼모로 가야했던 영친왕.. 명성황후 시해후 실질적인 황후의 역할을 했던 엄비가 영친왕의 어머니다. 영친왕은 일본에서 이방자 여사와 결혼하여 생활하다가 말년에 병이 든 후에 귀국하였다. 황태자이긴 했으나 허울뿐이었고, 일제에 의해 철저하게 무기력한 삶은 살았다. 그에비해 의친왕 이강은 황족으로서 독립운동을 지원하고, 비록 실패했지만 그 스스로도 상해 임시정부로의 망명을 시도했던 인물이다. 일제에 세뇌되어 민족의식이 전무했던 황태자 영친왕을 비난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 역시 일본에 의해 인생이 송두리채 차압당한 피해자니까. 다만 우리에겐 그래도 의친왕과 같은 인물이 있었음이 자랑스럽다는 것이다. 복녕당 아기씨 덕혜옹주에 대해서는... 애잔한 마음뿐이다. 영친왕처럼 어린 나이에 일본에 끌려가 정략 결혼을 하고, 마음의 병을 얻어 귀국할 당시에는 이미 정신적으로 황폐해져 있었다. 귀국후 이방자 여사와 낙선재에서 보낼 수 있었던 것이 그나마 말년의 마지막 짧은 평화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대한민국에 정치적 실체로서의 왕족이나 황족은 없다. 그러나 그 가족사는 홍유릉의 묘역과 함께 우리 역사의 일부가 되었다. 한번쯤은, 볓 좋은 날 홍유릉에 가서 대한제국 황실의 묘들을 둘러보기를 권한다. 허망하고 무력했던 우리 근대사를 되집어 보는 경험을 해보는 것도 국민으로서의 도리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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