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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일본

<교토의 사찰> 광륭사 : 쇼토쿠 태자와 목조 반가 사유상

by *Blue Note*

<교토 여행> 광륭사 (고류지) 


교토 방문 첫날,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이 광륭사 (고류지)다. 교토에서 가장 오래된 절로 신라에서 건너온 도래인 하타씨 (진하승)가 세웠다는 기록이 일본 사기에 있다. 이 고찰은 여러 가지 면에서 의미가 깊다. 우선 고류지는 일본에 불교를 도입하고 발전시킨 성덕태자 (쇼토쿠 태자)를 신앙의 대상으로 모신 절이다. 우리에게는 신라계 도래인이 일본에 세운 절이라는 의미 이외에, 일본 국보 1호인 목조 반가사유상을 볼 수 있는 곳이라는 점에서 남다르다. 조금 설명을 부연하자면 이 목조 반가사유상은 우리의 국보 83호인 금동 반가사유상과 매우 흡사한데, 제작자가 누구냐에 대해 학자들 간에 논쟁이 뜨겁다. 쇼토쿠 태자 사망 후 신라에서 사신이 들어오면서 불상 1구를 포함해 금탑, 사리 등을 가져왔다는 기록이 문제의 출발점이다. 이 기록에 있는 불상이 바로 광륭사의 목조 반가사유상이 아닌가 하는 한국 측 학자들의 주장이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건너간 불상일 가능성에 대해 일본 학자들은 인정하지 않고 있는 상태로, 새로운 결정적인 증거가 없는 한 지루한 공방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광륭사 영보전에는 이 반가 사유상 이외에도 상투미륵상, 진하승공 부부 신상 등 국보급 문화재가 즐비하다. 

광륭사 삼문

 

삼문과 인왕상

 

성덕황태자전(쇼토쿠태자) 비석

삼문을 바라보고 섰을 때

좌측에 있다.

 

삼문의 후면 모습

 

삼문을 등지고 바라본 고류지 경내

고요하고 경건하다.

 

경내에 들어서서

바로 왼쪽으로 보이는 전각

이름을 모르겠다.

인터넷으로도 찾아봤지만 실패...

계속 확인해봐야겠다.

 

 

태자전 (본전)

쇼토쿠 태자상이 본당의 본존으로 모셔져 있다.

 

강당

 

멀리 정면으로 보이는 건물이

구 영보전이다.

오른쪽에 신 영보전이 있다.

 

영보전

내부 촬영은 엄격히 금지된다.

이 곳에 반가사유상을 비롯한

보물급 문화재가 있다.

 

 

목조 반가사유상

인터넷에서 퍼왔다. 

 

영보전 관람을 마치고

돌아 나오는 길

자그마한 신사가 눈길을 붙잡는다.

 

교토 여행의 시작을 고류지로 잡은 이유는 자명하다. 반가사유상을 직접 눈으로 보는 감동을 조금이라도 빨리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막상 이 아름다운 목조상을 보고 나니 과연 명품임을 알 수 있었다. 고요하고 우아하며 신비롭다. 깊은 감동을 받았다. 숙소가 있던 교토 본쵸토 거리에서 고류지까지는 거리가 꽤 되었다. 지하철을 타고 어느 역인가에서 내린 후 다시 버스를 타고 찾아갔다 (나중에 보니 한 번에 가는 버스도 있었는데, 그때는 몰랐다). 지하철에서 사람 구경, 버스에서는 바깥 풍경을 즐겼다. 고졸하지만 기품이 넘치는 고류지는 한낮의 적막감에 싸여 있었는데 그 또한 인상적이었다. 큰 절은 아니지만 단정한 전각들, 국보급 문화재들은 분명 고류지의 자랑일 터이다. 다만 한 가지 아쉬움도 있다. 일본인들이 문화재를 사랑하고 지극 정성으로 잘 보전하는 건 칭찬받아 마땅하고 우리도 배워야 할 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특히 '모노'라고 하여 물건에 대한 사랑과 집착이 대단하다. 그래서일까.. 광륭사 영보관에는 담당 직원들이 배치되어 혹여 관람객이 무슨 규칙에 어긋나는 행동이라도 할까봐 주시하고 있다. 거의 감시 수준이다, ㅋㅋ.  특히 이들은 문화재를 촬영하는 행위에 매우 민감하다. 이미 촬영이 금지되어 있음을 알고 갔고, 사찰 측에서 그렇게 정한 방침을 어길 생각은 아예 없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문화재를 사진으로 찍으면 왜 안되는지, 그런 의문이 든 것도 사실이다. 서화 같은 것은 카메라 플래시에 의해 변색이나 손상이 갈 수 있다고 해도, 나무를 깎아 만든 조각품이 촬영으로 인해 입는 손상은 대체 무엇인가. 전시장에서 사진 찍고 하면 번잡스러울 뿐 아니라, 부주의한 관람객끼리 부딪힐 수도 있고... 뭐 그런 이유도 있으려면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그게 이유라면 왠지 옹색하다, ㅋㅋ. 언젠가 블로그 글에, 일반인의 접근을 원천 차단해버린 세조의 왕릉, 광릉에 대해 비판글을 썼던 것이 생각난다. 보존의 측면에서만 보자면 왕의 무덤이든, 국보 조각상이든 촬영은 말할 것도 없고 아예 관람 자체를 못하게 하면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백 년에 한 번 공개하는 문화재들도 수두룩하다. 하지만 그러면 과연 유적이나 문화재는 무슨 가치가 있는 것일까. 사람들로부터 멀어져서 고립되고 차단된 인류의 유산은 이미 존재 의미를 잃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혜곡 최순우는 이렇게 말했다. 유물이라는 것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고. 언젠가는 시간과 함께 소멸되어 없어져 버리는 것이라고 했다. 그 유물 속에 깃든 정신이 중요하다고 했다. 고류지 영보관의 지극한 유물 사랑을 보면서 생각나는 혜곡의 일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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